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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작은 ‘통일’의 공간이 되다

평양 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군사분야 합의서가 하나씩 둘씩 실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판문점 지역의 지뢰 제거 및 비무장화, 그리고 자유로운 이동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판문점은 남북 적대의 상징이었다. 1976년 8월에 일어났던 소위 ‘도끼만행 사건’으로 판문점 지역은 공동경비구역에서 분할경비구역으로 바뀌었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비무장한 소수의 경비병력, 그리고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판문점은 양측이 무장한 채로 서로를 차갑게 응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판문점 구역 자체도 분단되어 남북의 분리 장벽이 설치되었다.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남북 두 정상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넘나들었던 ‘장벽’은 1976년 사건이 남긴 상처였다.

그간 판문점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가까운 사건만 하더라도 지난해 11월 북한군 1명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하였고 이 과정에서 총격까지 있었다. 멀리 1967년에는 얼마 전 무죄로 판명된 간첩사건의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하는 사건도 있었다. 또한 1996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판문점은 남북을 이어주는 대화의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만들어진 직통 전화는 판문점 남북에 설치됐고, 나아가 남북의 밀사들이 수시로 오고가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판문점이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1998년 6월과 10월 고 정주영 회장의 그 유명한 ‘소떼방북사건’이었다. 10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통해 남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그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었다.

이제 그 판문점이 그간 남북의 적대와 갈등의 상징에서 벗어나 ‘작은 통일’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과거 판문점은 남북으로 그어놓은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분단의 공간이었지만, 앞으로 판문점은 그 장벽을 넘어 상대방 지역까지 넘어설 수 있는 자유 왕래의 공간이 될 전망이다. 영화 JSA에 나온 것처럼, 남북의 병사가 사이좋게 초코파이를 나누어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음직하다. 판문점의 평화는 곧 남북의 평화, 통일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지금 이처럼 작은 통일의 공간이 가능한 것은 올해부터 쉼 없이 이어져 온 남북의 대화와 협력 때문이다. 나아가 남북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가 곧 통일의 든든한 받침돌이 되고 있고, 또 통일이 평화를 더욱 굳게 해준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게 된다. 이제는 이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끊어진 금강산 길을 잇고, 개성으로 가는 길을 잇고, 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작은 통일의 공간을 이미 경험했다. 개성공단이 그렇고, 금강산이 그러했다. 싸우고, 웃고, 부딪히면서 작은 통일을 경험했던 개성공단은 남북의 경쟁과 적대의 상황 속에서 힘없이 무너졌으며, 금강산은 불행했던 사건을 계기로 닫혀버렸다. 남북의 평화가 없는 상태에서는 ‘작은 통일’의 공간조차 서로에게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지난날의 남북관계였다. 판문점이라는 ‘작은 통일’의 공간 역시 서로가 부딪히면서 만나다보면 이러 저러한 사건들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다툼을 겪으면서 친해지듯이, 앞으로 판문점에서도 작은 다툼이 더욱 큰 평화와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분단보다는 통일이라는 원칙이어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의 기초를 놓았던 빌리 브란트가 말한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외침을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장벽이 없어진 판문점, 평화로운 공존과 ‘작은 통일’의 공간에서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기대한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chungyc69@sogang.ac.kr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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