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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호천중혈(一毫穿衆穴)

교황 ‘알현’과 자주국가 품격

의욕이 넘치면 신중함을 잃게 되고, 신중함을 잃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이 그렇다. 문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평양 방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을 이끌어 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교황의 평양 방문이 성사된다면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남북관계의 열쇠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이 쥐고 있다. 그래서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여론 환기라는 상징적 의미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 과정에 불거졌던 ‘알현’ 논란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교황 만남을 ‘알현’이라 표현했다. 국어사전 속 ‘알현’은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이라고 기술돼 있다. 교황이 가톨릭의 최고어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가톨릭 국가가 아닌 다종교 사회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교황을 만났다. 그런데 중세 봉건영주들이 교황을 만날 때나 쓰는 ‘알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자주국가의 외교용어로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가톨릭을 믿지 않은 4500만 국민에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하나님께 서울봉헌” 발언만큼이나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현 정부 안에는 가뜩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비서실장, 통일부 장관, 문체부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등 가톨릭 인사들이 많다. 특히 ‘알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청와대 가톨릭신자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일호천중혈(一毫穿衆穴)이라는 말이 있다. “털끝 하나로 모든 구멍을 뚫는다”는 말인데 하나로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과거 문 대통령의 조계사 법당 참배를 언론에 공개되지 않도록 막은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의 가톨릭 미사는 국민들에게 생중계됐다. 장로대통령임을 자임하며 종교편향을 일으켰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린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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