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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명 선사의 영가법문 유감

기자명 이제열

불법과 다르게 설하면 누구든 외도

어느 선사, 망자마음 헤맨다며
유족들 영가 극락왕생 원하면
반드시 천도재 지낼 것 강권

한국불교에 최고의 선지식은 공식적으로 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분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는 모 선사가 계시다. 수행력이 출중하다 하여 종정스님만큼이나 존경을 받는 분이다. 어느 날 나는 그 선사가 계시는 선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분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날 법문은 주로 죽은 영가들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되는지를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스님의 이런 설법 때문인지 그 선원이 선 도량임에도 불구하고 법당은 마치 납골당처럼 영가들 위패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선사의 법문은 이러했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이 몸을 끌고 다니던 마음이 몸에서 쏙 빠져나와 구천을 떠돌게 됩니다. 몸은 죽어도 마음은 죽는 법이 없기 때문에 업에 따라 세세생생 몸을 받아야하고 끝없는 생사를 거듭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진짜 자기인 마음이 몸으로부터 떠나면 몸은 송장이 되고 마음은 49일 동안 캄캄한 허공을 떠돌다가 자기가 태어날 곳을 정합니다. 바로 이렇게 사십구일 동안을 떠도는 몸이 없는 마음을 우리는 영가라고 부릅니다. 이런 영가를 선가에서는 ‘부모미생 본래면목’이라 부르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부르기도 하고, 참나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가는 생전에 업의 영향을 받습니다. 업에 따라 인간의 몸뚱이를 받을 수도 있고 축생의 몸뚱이를 받을 수도 있으며 귀신이나 아귀, 또는 지옥중생의 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몸을 받기 전 사십구일동안 영가는 캄캄한 허공에서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떨어야 합니다. 동서남북도 모른 채 그냥 떠돕니다. 그러다가 사십구일이 되어 태어날 시간이 도래하면 영가가 태어날 장소에 빛이 보입니다. 그러면 영가는 밤중에 길 잃은 사람이 불빛을 본 것처럼 반가워 곧장 빛을 향해 날아갑니다.”

선사의 법문은 계속 이어졌다.

“영가는 몸뚱이가 없기 때문에 찰나에 그 불빛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만 그 불빛이 비치는 집에 들어가는 순간 다음생의 부모가 정해집니다. 그 불빛이 비치는 집이 자기가 태어날 어머니의 자궁입니다. 금생에 복을 많이 닦으면 좋은 부모의 태중에 들고 악업을 지으면 나쁜 부모의 태중에 들어 운명이 결정됩니다. 천도재는 영가가 이렇게 새 몸뚱이를 받기 전 사십구일 동안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어 좋은 몸을 받게끔 하는 의식입니다. 중죄를 지은 중생이라 할지라도 천도재를 지내면 죄장이 씻겨 좋은 곳에 태어나고 염불축원을 함께 하면 극락에 왕생하는 것입니다.”

나는 선사의 법문을 들으면서 불교에 대한 그분의 견해가 대단히 왜곡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선사의 법문에는 불자들을 설득시킬만한 불교적 논리가 충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설하신 존재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처님은 몸과 마음을 연기적 입장에서 관찰하시고 몸이 없는 마음이나 마음이 없는 몸은 성립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 몸은 마음에 의지해 발생하고 마음은 몸에 의지해 발생하므로 선사의 법문처럼 몸을 떠난 마음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마치 기름이나 장작 등과 같은 연료에 의지 않고도 불이 홀로 타거나 옮아 다닌다는 말과도 같아 모순된다.

맛지마니까야 ‘갈애의 부숨에 대한 큰 경’에는 마음이 업에 따라 윤회한다고 떠들고 다니던 싸띠 비구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부처님은 싸띠 비구에게 마음은 육근과 육경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마음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몸을 받는다는 견해는 악견에 불과하다고 꾸짖는다. 부처님 당시의 싸띠 비구와 다를 바 없는 견해를 그 선사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선지식이고 도인이라 해도 부처님의 교설과 맞지 않는 설법을 구사한다면 이는 외도의 무리와 다를 게 없다. 남들에게 법문을 설하기 전에 자신의 견해가 과연 불법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해야 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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