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작가 미상의 ‘월하독경도(月下讀經圖)’
20. 작가 미상의 ‘월하독경도(月下讀經圖)’
  • 김영욱
  • 승인 2018.10.30 10:59
  • 호수 14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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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수단일 뿐…진리는 마음속에

시간 가고 계절 바뀌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야
깨달음 담긴 마음 문 열릴 것
작가 미상 ‘월하독경도’, 종이에 먹, 74.6×33.0㎝, 1332년, Metropoli tan Museum of Art 소장.
작가 미상 ‘월하독경도’, 종이에 먹, 74.6×33.0㎝, 1332년, Metropoli tan Museum of Art 소장.

學道先須究聖經(학도선수구성경)
聖經只在我心頭(성경지재아심두)
驀然踏著家中路(맥연답착가중로)
回首長空落雁秋(회수장공낙안추)

도를 배움은 마땅히 불경 공부가 먼저이니 불경은 다만 내 마음에 있다네. 문득 집 안의 길을 밟아 딛고 높고 먼 하늘로 고개 돌리니 기러기 내려앉는 가을이로다. 지엄(智儼, 1464~1534)의 ‘희준 선덕에게 주다(贈曦峻禪德)’.

가을밤의 달빛은 영롱하다. 산속 수행자들에게 맑고 찬란한 그 빛은 등불과 같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등불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해진다. 여물어가는 풀벌레들의 기분 좋은 소음과 내면의 정적이 조화를 이루는 그 순간이 진실로 글 읽기에 좋을 때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아침 해가 밝아온다.

한 노승이 소나무와 드리워진 가지를 기둥과 지붕으로 삼은 자신만의 공간에 홀로 앉아있다. 듬성듬성 남은 머리와 담상담상 돋은 수염의 늙은 노승은 달빛에 비추어진 불경을 읽는다. 그는 왼손에 쥔 불경의 내용에 몰두한 듯 구부정한 자세로 오른손을 들어 긴 눈썹을 잡아 만지작거린다. 두어 번 빠른 붓질로 그려낸 몸을 덮은 가사는 섬세한 표현의 얼굴을 상대적으로 부각하는 한편, 번민에 휩싸이지 않고 달빛처럼 맑은 노승의 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불경은 곧 불가의 변치 않는 진리다. 불경 공부는 도를 배우기 위해 여느 수행자들이 시작하는 수행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달빛 아래에서 불경을 읽는 수행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선종화의 한 주제로 자주 그려졌다. 이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매일 경전을 읽는 동안에도 변치 않는 달처럼 영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하지만 불경 공부라 해서 경전에 적힌 한 글자 한 글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몰두해서야 되겠는가. 문자는 그저 한낱 수단에 불과할 따름이고, 진리는 늘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14세기에 활동한 옥계사민(玉谿思珉) 또한 “단지 이 한 권의 경전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뚜렷이 깨우칠 수는 없다네. 해가 나오고 달 또한 떨어지니 어느 시기에 깨달음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 몇 글자를 적음으로써 그 의미를 되묻고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불가의 ‘주공부(做工夫)’에서 유래한 이 말은 곧 참선(參禪)에 모든 마음과 시간을 기울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공부는 어떠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다. 시간 가고 계절 바뀌는 것을 잊을 정도로 몰두해야만 공부 귀가 열리고 깨달음이 담긴 마음의 문을 엿볼 수 있다.

경전에 녹아든 달빛의 시간만큼 노승의 공부도 맑고 깊지 않겠는가. 차맛 또한 맑고 깊어지는 가을이다. 잠시 차를 마시며 먼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나의 공부는 과연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가. 어느덧 가을인가, 아니면 아직도 가을인가 말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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