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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양 선불교와 여성-하

기자명 장은화

남녀평등 수행문화 지향하며 선불교 영역 확대

1990년대 선원들, 남성중심에서
중립적으로 변경…절수행도 제거

법복 등에서 양성평등 지향하며
여성 수행자에 동등한 지위 보장

낙태 선택권 옹호 등 여성들 지지
에이즈·레즈비언 문제 등 관심도

종법 등서 비구니 승가 제약있는
한국의 열악한 현실과 극명대비

이제 불교는 아시아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양 최초로 양성평등의 분위기에서 수행되고 있다.
이제 불교는 아시아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양 최초로 양성평등의 분위기에서 수행되고 있다.

조상들의 명호를 염송하는 것도 예불의식의 중요 부분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런 절차를 통해서 불교전통에서 계보의 역사와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보의 조상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남성이다. 여성 수련생들은 여성조상과 역할모델이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면서 불교역사 속에서 위대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두드러진 여성 조상들은 역사 속에서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성들이 찾아낸 자료는 장로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였다. 이 500여 편의 시 속에는 제1세대 여성불자, 즉 붓다의 남성제자와 같은 수준의 깨달음을 얻은 여성제자들의 깨달음의 노래가 담겨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예불에서는 격일로 번갈아가며 장로니게에 나오는 여성장로의 이름을 염송하면서 시작하여 모든 잊혀진 여성조상들에 대한 감사로 끝맺음한다.

이후 여성들은 완전한 자격을 갖춘 지도자로 진출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아시아 전통의 권위주의적, 위계적, 가부장적 요소는 진정한 불교와는 무관한, 아시아 특유의 문화적 보따리라고 간주되어 개혁대상이 되었다. 특히 페미니스트 선 수련자들이 볼 때, 선불교는 유교와 조상숭배의 전통이 융합된 가장 중국적인 불교로서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와 위계질서를 반영하고 있었다. 선은 유교의 가정과 마찬가지로 섬기는 조상이 있고, 조상의 유물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면서 가풍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르러 선원들은 남성중심의 언어를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꿨고, 경책(警策)의 사용과 의례화한 절 수행도 수행현장에서 변형되었거나 거의 제거되었다. 일반적으로 절은 아시아 불교에서 중요하고 또 아시아인들에게는 악수처럼 익숙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불상이나 스승 앞에서 절하는 행위가 기독교적인 전통과 관련하여 그들의 마음을 크게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책의 사용에 대해서도, 스즈키 다이세츠는 선사의 타격을 마지막 깨달음에 이르는 열쇠라고, 즉 제자의 에고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이것을 체벌 혹은 스승의 암묵적 권위 표현으로 간주하기도 했기 때문에 현대 미국의 선사들은 경책의 사용을 권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외에도 염송이나 법복 등 의례 면에서도 완전한 양성평등을 지향하면서, 여성이 사제, 승려, 지도자로 진출하는 데 제약을 없앴다.

이제 불교는 아시아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양 최초로 양성평등의 분위기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수행과정, 사용 언어, 선원운영, 지도자 등의 모든 면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불교단체에서 여성은 남성과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고학력의 젠더평등주의자들이며 남성과 동일한 역할과 책임을 지고 있다. 선수행의 내용에서도 여성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은 일본인 선사의 뒤를 이어서 미국 여성이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남성 위주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여성 스타일의, 여성의 입장을 반영한 수행문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성법사들은 일상생활의 수행을 지향하는 편이며 단기간의 집중수행과 깨달음 위한 공격적인 사무라이 스타일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다.

여성이 주도하는 수행의 범위도 넓어졌다. 미국 조동선 법사인 이본 랜드(Yvonne Rand)는 조동선에 위빠사나와 티베트 불교를 접목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낙태선택권 옹호와 낙태반대라는 불교적 시각을 생식문제에 적용하면서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선 수행자들은 게이와 레즈비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성애혐오 성향은 90년대에 들어서도 선원에 잔존하고 있었지만, 게이 남성과 레즈비언 여성도 승려와 재가자로서 다양한 불교단체에 통합되었다. 레즈비언이자 뉴욕 빌리지 젠도(Village Zendo)의 창설자인 엔쿄 팻 오하라(Enkyo Pat O’Hara)는 에이즈 환자에게 선을 가르치면서, 선의 접근법을 성 정체성, 인종, 계급, 보건 등의 이슈에 연계시키고 있다. 또한 그녀는 화이트플럼 아상가의 에이즈 네트워크도 운영하고 있다. 말기환자, 환자보호자 그리고 유족들을 돌보는 데 마음챙김명상과 자비의 수행법을 적용하고 있는 젠 호스피스 프로젝트(Zen Hospice Project)에도 많은 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선의 여성화 경향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적지 않다. 붓다가 남녀평등을 주장했지만 그 자체가 불교의 목적일 수는 없듯이, 실재와 현상의 불이(不二) 그리고 마음의 공성체험이라는 선불교의 목적과 페미니즘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남녀평등이란 깨달음의 추구라는 선불교 본연의 목적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시아 전통의 옷을 벗겨내면서 깨달음의 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는 아시아의 영성까지도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성, 인종, 사회계급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하려는 페미니즘의 입장이 종교수행에도 여과 없이 반영된다면 자칫 소중한 것을 잃을 위험도 있다. 고통의 해방이라는 불교의 목적은 남녀관계의 개선을 통해서 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되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불교에서 여성들이 그 짧은 시기에 평등의 수행문화를 일구어낸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비구니승가의 열악한 현실과 극명히 대비된다. 한국불교 대표격인 조계종은 1994년 혁신적인 개혁종단을 출범하면서 종법을 개정했다. 당시 비구니 승가는 개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비구니의 위상강화를 요구했다. 팔경계는 ‘소승계율에 갇혀버린 대승정신’이므로 재해석할 것, 종단 지도자의 자격요건에 ‘비구’로 한정된 것을 ‘승려’로 고칠 것, 교구본사에 비구니승가의 참여를 보장할 것이 그들의 요구사항이었다. 그러나 종권획득에 성공한 비구 승가는 이를 무시했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비구니의 지도자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종헌은 그대로이다. 이번에 선출된 제36대 총무원장도 종헌개정의 의지가 없는 듯하다. 전통적인 신앙불교가 급속하게 세력을 잃어가고, 무종교·무신앙의 새로운 대안적 영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여성을 배제하는 한국불교와 그 지도자들을 서양불교도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혹시 가부장제와 권력에 도취된 돈키호테 마초 집단으로 보지는 않을까?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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