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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노인 몸과 맘에 온기 채우려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복지
  • 입력 2018.11.01 21:31
  • 수정 2018.11.01 21:33
  • 호수 1463
  • 댓글 9

원효대사 오도성지 수도사
‘찾아가는 사찰음식’ 13년
육류 없고 제철 재료 사용
8개 반찬 100인분씩 조리
노인주간보호센터 등 전달

적문 스님과 사찰음식전문가 정효 스님, 오명화(62, 여래심), 김경희(59), 정옥용(52)씨는 3일 내내 8개 종류 반찬 100인분씩 3세트를 조리해 홀로노인들과 나눴다.
적문 스님과 사찰음식전문가 정효 스님, 오명화(62, 여래심), 김경희(59), 정옥용(52)씨는 3일 내내 8개 종류 반찬 100인분씩 3세트를 조리해 홀로노인들과 나눴다.

꾸역꾸역 흰밥 한 술 우겨 넣는다. 마땅한 반찬이 없어 찬물에 만 흰밥이 모래알 같다. 밥그릇만 덩그러니 놓인 밥상을 보니 홀로 챙겨먹는 저녁끼니가 쓸쓸하기만 하다. 늙어 몸도 성치 않으니 서럽기도 하다. 그때, TV에서나 보던 귀한 사찰음식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왔다. 푸드뱅크 아니면 노인주간보호센터다. 반찬 종류가 8개나 됐다. 사찰음식전문가들이 만들었다고 했다. 고마웠다. 밥과 함께 몇 젓가락 맛보니 정성이 느껴졌다. 홀로 노년을 보내던 할아버지는 빙긋 웃었다. 꾸역꾸역 저무는 것처럼 보이던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뒷산을 뉘엿뉘엿 넘어갔다.

10여년전부터다. 평택시와 인근 지역 홀로노인들의 밥상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홀로노인에게 13년째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사찰음식은 원효대사 오도성지 평택 수도사(주지 적문 스님)의 정성이다. 수도사는 11월1일 평택 푸드뱅크와 송탄 푸드뱅크, 합정장애인주간노인센터에 각각 100인분씩 총 300인분의 사찰음식 반찬을 전달했다. 사찰음식 반찬은 각 복지시설에서 지역 홀로노인들에게 전달됐다. 사찰음식 반찬을 받은 홀로노인들은 “반찬이 풍성하고 맛있다”며 수도사 주지 적문 스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장이기도 한 적문 스님과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운 사찰음식전문가 정효 스님, 오명화(62, 여래심), 김경희(59), 정옥용(52)씨가 3일 내내 조리한 반찬들이다. 10월31일 수도사 내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 조리실은 사찰음식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무왁저지를 졸이고 있었고, 다 조리된 반찬은 통에 나눠 담기 바빴다. 이날 조리한 사찰음식 반찬은 무왁저지, 콩고기볶음, 곤약조림, 연자견과조림, 무청시래기찜, 짜장, 묵은지볶음, 건도토리묵 등 8개 종류. 오신채는 물론 육류 식재료는 하나도 섞이지 않았다. 제철 식재료는 기본이다.

적문 스님이 조리한 사찰음식은 이미 정경완 한국외식산업연구소 연구원에게 영양학적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 받기도 했다. 분석결과 사찰음식은 적정량의 칼슘과 철분, 단백질,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대장암, 성인병, 변비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영양소인 식이섬유가 풍부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심장병 혈관질환 원인인 트랜스지방과 콜레스테롤은 ‘제로’였다. 어르신들에게 안성맞춤 건강식인 셈이다. 이날 적문 스님과 제자들이 조리한 사찰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찾아가는 수도사 사찰음식’은 1990년대부터 품어 온 적문 스님의 원력 중 하나다. 비구스님이 앞치마를 두른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던 시절, 적문 스님은 수행자의 길도 의미 있지만 전문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전문적인 사찰음식으로 계층포교에 나서는 일도 자비심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다.

적문 스님의 원력은 복지시설로 사찰음식 강좌를 다닐 때 발아했다. 조리대 1개에 4명이 실습을 했는데, 조리 뒤 홀로노인들이 “한 사람씩 조리대를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반찬으로 담아가야 하는데, 4명이 함께 만들어 담으면 양이 적어서였다. 적문 스님은 1개 조리대에 1명이 실습하도록 했고, 반찬통을 구입해 홀로노인들에게 건네며 담아가라고 독려했다. 그때부터 적문 스님은 아예 ‘찾아가는 수도사 사찰음식’을 시작했다.

적문 스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제철 식재료로 정성껏 사찰음식을 만들어 꾸준히 나누다보니 홀로노인들도 진심을 느꼈다”며 “사찰음식 먹고 몸이 충만감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찰음식은 3개 복지시설로 전달됐다.
사찰음식은 3개 복지시설에 전달됐다.

사실 ‘찾아가는 수도사 사찰음식’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적문 스님과 수도사 사부대중이 모든 비용을 감당했다. 입소문이 나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사찰음식특화 사찰로 지정했고, 경기도 역시 슬로우푸드 체험사찰로 수도사를 포함시키는 등 그나마 조금 숨통이 틔었다.

‘찾아가는 수도사 사찰음식’ 첫 시작부터 함께한 오명화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장은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고통”이라며 “우리도 언제가 늙고 병든다.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정성으로 조리한 음식을 가져다 드리며 느끼는 보람에 아직도 이렇게 계속하고 있다”고 웃었다.

차곡차곡 차 안에 쌓여있던 사찰음식 반찬들이 복지시설에 건네졌다. 적문 스님과 제자들이 텅 빈 트렁크로 차를 몰아 사찰로 돌아오니, 그제야 수도사 머리 위에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

평택=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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