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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승과 재받이

불교 무형유산은 무관심 영역
불교 무형문화재 4.3% 불과
의식집전 스님들 홀대도 일상

고려시대부터 700여년간 전승돼왔던 불복장작법이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됐다. 여법했던 의식은 세월이 가면서 점차 생략되고 설행할 수 있는 스님들마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이번 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는 불복장작법에 생명력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 무형유산은 오랜 세월 무관심의 영역이었다. 이는 국가 지정문화재 현황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유형문화재 2004건 중 불교 관련이 1280건으로 전체 63.9%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가무형문화재 140종목 중 불교 관련은 영산재(제50호, 1987년), 연등회(제122호, 2012년), 삼화사 수륙재(제125호, 2013년), 진관사 수륙재(제126호, 2013년), 아랫녘 수륙재(제127호, 2014년)의 5건에 불과하다. 불복장작법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4.3%에 불과하다. 1700년 역사의 한국불교가 지닌 무형의 자산이 한국문화에서 얼마나 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주된 원인으로 불교의례에 대한 무시와 홀대를 들 수 있다. 한국불교는 근대기를 거치며 선적 깨달음이 최상의 가치로 여겨지고 선방에 좌복을 깔지 않는 스님들은 아웃사이더로 취급받았다. 불경을 가르치는 강사스님들도 차별을 받는 판에 의례를 담당하는 스님이야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참선과 깨달음이 강조될수록 전통적인 불교의례는 번잡함과 기복의 대명사로 치부됐고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의식을 설행하는 스님들도 하찮게 여겨지고 ‘재승(齋僧)’이라는 번듯한 용어 대신 ‘재받이’라고 낮잡아 불려졌다. 이런 풍토에서 의례를 집전하거나 설행하는 스님들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궂은일을 애써 배우겠다고 나서는 스님이 준 것도 당연하다.

허나 의례는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종교의 근간이다. 무릇 의례는 사상과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단순하건 복잡하건 모든 불교의례에는 불교적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 있다. 깊은 내적 체험은 물론 장엄함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례의 역할이다. 이렇듯 풍부한 상징과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불교의례라는 그릇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사라져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유형유산의 경우 보존만 잘한다면 훗날 얼마든지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무형유산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전승의 주체이기에 시간을 놓치면 전승이 끊기는 치명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만다. 점안의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는 파불(破佛)의식과 같은 특수한 의식과 예참, 삭발, 목욕과 같은 생활 의식이 무관심 속에 자취를 감춘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오래 전이다. 무형유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10월27일 삼척 안정사에서 열린 ‘영산화엄성주대재 및 땅설법’ 시연회에 깊은 관심과 찬사를 표명한 것도 사라진 줄 알았던 땅설법이 전승되고 있다는 환희와 안도 때문이었다.

불교 무형문화재 6건 중 5건이 2010년 이후 지정됐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불교계가 뒤늦게나마 무형유산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다행이다. 또 발우공양, 생전예수재, 사십구재, 다비의식, 이운의식 등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나온다. 지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사찰을 대상으로 실시한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와 후속 사업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 덕에 불교 관련 조각, 회화, 공예, 전적, 목판, 석조유물 등 130여건이 새롭게 국가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각 사찰에서 이뤄지는 무형유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형 국장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21세기에는 문화의 주도권을 잡는 국가가 세계인의 감성을 지배할 것”이라고 했으며,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도 “옛날에는 국가의 운명을 왕이 좌우했지만, 지금은 국가 이미지 즉 문화가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문화의 시대다. 사라져가는 불교 무형유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한국문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며, 동시에 인류의 무형유산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다.

mitra@beopbo.com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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