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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의 의례

  • 법보시론
  • 입력 2018.11.05 11:07
  • 수정 2018.11.06 08:44
  • 호수 1463
  • 댓글 0

웬 논설, 웬 의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논설이나 의례라는 어휘의 현재적 역을 수용하면 당연하다. 하나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논설이나 의례를 보면 논과 설을 의례적 성격으로 논해보려는 것임을 추측하는 데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지난 9월 ‘법보신문’ 1456호 기사에 따르면 올 하반기 불교주제 학술대회가 60여개나 열린다고 한다.

학회는 논문이 발표되고 그것의 다수는 주제에 대해 논의와 자신의 주장을 대중과 세상 앞에 풀어내는, 고백하는 도량으로, 논과 설이 춤추는 의례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학회에 평균 4~5편의 논문이 발표된다고 보면, 올 하반기만도 무려 240~50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가히 학문의 풍년이다. 순수 학문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많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겠지만 실제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적지 않다. 현재 적지 않은 학술대회가 특정 사찰의 주제 의뢰와 후원으로 진행되어 순수한 학문 연구의 장이라고만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 학회이든 의뢰에 의한 학회이든 논문의 형식으로, 논과 설의 주장으로 진행되는 논설의 향연에 대해 의례적인 성격의 관점으로 몇 가지 되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논문의 ‘논’이나 ‘설’은 설득력 있는 논리의 증거와 참신성과 발표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현실 학회의 모습이 그런가 하는 점이다. 발표자는 누구나 자신의 발표가 참신하다고 생각해서 발표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발표될 만한 가치와 참신성을 가지고 있는지, 발표의 초점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익히 발표된 내용을 장황하게 소개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이 점검돼야 한다. 이것은 발표자 논평자 사회자 소임에게 공히 부여된 의무이다. 논과 설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의례적인 인사나 사적 담화에 발표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의뢰 측을 기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청중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고, 지면 낭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학술대회의 진행 양상인데, 한 발표에 배당되는 시간은 논평을 포함해 40분 정도의 시간을 배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20~30분 정도에 불과하다. 그 시간에 발표할 수 있는 양은 발표 원고[A4 12장 분량]의 절반도 채 하기 어렵다. 해서 발표원고를 그대로 또는 중간 중간 읽거나 중언부언 반복하면 정해진 발표 시간을 지킬 수 없게 되어 원만한 학회 진행이 어렵게 되고 바람직한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게 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기보다 강연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알려진, 밝혀진 사실을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예를 적지 않게 본다. 또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발표에 끌려가는 사회자나 주최 측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약속된 시간 준수는 모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셋째, 논문의 각주 등 표기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불교학회가 주관한 2017년의 논문표기통일안이 그것인데, ‘간결성, 일관성, 정확성, 국제성’이라는 명분 아래 각주표기를 ‘저자(연도), 쪽수’로 간략하게 하고 있다. 이 방식은 필자의 상식으로는 매우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논문이나 저서 제목을 일일이 밝히지 않고 ‘전게서’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와 연도만 밝히는 것은 간결하기는 하나 독자에게 참고문헌의 제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주게 된다. 복사기능이 탁월한 현재의 문서편집기능이나 활용을 참고하면 논문이나 저서의 제목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이고 논설이 제기되고 확립되는 학회의 바람직한 의례라고 하겠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 초빙교수woochun50@naver.com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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