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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사마와티 ④

기자명 김규보

불길 옮겨붙을 무렵 아라한과 성취하다

마간디야 모함에 불길 휩싸여
화마에도 명상 들어 열반맞아
죽는 순간까지 선정 잃지않아

사마와티를 해하기 위해 마간디야가 처음에 한 일이란 단순히 무고에 불과했다. 사마와티가 양부와 일을 꾸며 왕을 내쫓으려 한다거나 수행자들과 방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을 냈던 것이다. 하지만 왕도, 사람들도 소문을 믿지 않았다. 무고가 통하지 않자 왕의 침실에 독사를 풀어놓고는 사마와티가 왕을 죽이기 위해 악독한 짓을 했다고 모함했다. 이때만큼은 그 말을 믿은 왕이 분노하여 사마와티를 불러 추궁한 뒤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화살이 사마와티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꽃으로 변한 것이었다. 왕은 그제야 죄 없는 아내를 참혹하게 죽일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참회했다. 이를 계기로 왕은 붓다에게 귀의하여 때때로 설법을 듣고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사마와티를 해하기는커녕 왕마저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마간디야에겐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모욕이었다. 모함으로는 절대 사마와티를 끌어내릴 수 없다고 여긴 마간디야는 숨통을 끊어 버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 출세욕이 커 자신과 대화가 잘 통했던 숙부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숙부님. 저 여자가 있는 한 저는 후궁 신세를 면하지 못하겠어요. 숙부님도 후궁의 친척으로 남게 되길 원하는 건 아니겠죠. 내일 마침 왕이 궁궐을 나가기로 했으니 숙부님은 이곳에 불을 질러 주세요.”

이튿날 오후, 왕이 없는 틈을 타 마간디야의 숙부가 불을 놓자 궁궐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뜨거운 열기와 지독한 연기를 헤집던 사마와티는 불길이 사방에서 타오르고 있어 나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을 따르는 하녀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깨달음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절박함을 더했다. 깊은 명상에 든 사마와티는 불길이 살에 옮겨 붙을 무렵 아라한과를 성취하였고, 화마에 뒤덮인 죽음이 아닌 거룩한 열반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실한 우바이였던 사마와티가 불에 타 죽은 것을 의아하게 여긴 제자들이 붓다에게 이유를 물었다. 붓다는 사마와티의 전생을 들여다 본 뒤 웃으며 말했다. “사마와티는 전생에도 왕비였다. 하루는 숲에서 놀다가 몸을 따듯하게 만들려 붙인 불이 수행자에게 옮겨 갔는데, 그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수행자가 타 죽도록 그대로 두었다. 사마와티가 죽은 건 그 과보이다. 하지만 모두 알아야 한다. 사마와티는 죽는 순간까지 선정을 잃지 않았고 끝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붓다의 말을 들은 대중은 슬픔을 거두고 사마와티의 깨달음과 열반을 기쁜 마음으로 축복할 수 있었다.

한편, 슬픔에 잠긴 왕은 사마와티의 죽음이 마간디야의 짓이라고 짐작은 했으나 증거가 없어 고민을 했다. 그러던 차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즉시 마간디야를 불러 말했다. “사마와티가 날 암살할까 봐 걱정해 왔는데 잘됐구나. 누가 불을 질렀는지 몰라도 알게 된다면 큰 상을 내려 칭찬하려 한다.” 이 말을 들은 마간디야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왕이시여! 그 불은 저와 제 숙부가 지른 것입니다. 오직 왕을 위해 한 일입니다.”

왕은 짐짓 기쁜표정을 지으며 마간디야의 숙부 등 불을 지르는 일에 공모한 일가친척들을 궁궐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곤 몇몇 대신에게 몰래 지시하여 궁궐 문 앞에 커다란 구덩이를 판 뒤 천으로 덮어 흔적을 가리도록 했다. 며칠 뒤, 마간디야의 친척들이 궁궐로 들어오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고 병사들이 즉시 달려들어 흙을 아래로 쏟아 부었다. 몸은 흙에 덮인 채 머리만 빼꼼히 내민 꼴이었다. “왕비를 죽인 네놈들은 너희가 한 일을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마간디야가 절규하며 친척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병사들이 불을 붙이자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마간디야는 병사들에 붙잡인 채 그 장면을 끝까지 봐야만 했다. 끝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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