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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콜럼버스의 잔혹

기자명 김정빈

순박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는 악마였다

뼛속까지 신앙 철저한 기독교인
야훼 찬양했던 무결한 신봉자
그는 자신 환대해준 원주민들을
불에 태워 죽이고 아이까지 살해
살인자이며 배신자, 강간자일뿐

그림=근호
그림=근호

13세기 전반, 유럽인들은 몽고군의 동유럽 정복과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을 통해 동양에 신비스런 문화국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니스의 여행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출간되어 널리 읽힘으로써 동방은 더더욱 신비스러운 지역이 되었다.

그 책이 나온 지 200년 후에 유럽의 탐험가들은 당시 보물과 같은 가치를 지녔던 향미료, 양념류, 실크 등을 수입하기 위한 인도 및 중국행 무역항로를 찾고 있었다. 당시의 모든 항해자들은 유럽에서 남쪽 방향으로 아프리카를 돌아 북상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항로에 회교도 해적들이 출몰하고 있어서 막대한 피해를 입기 쉽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던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지구는 둥그니만큼 그러지 말고 서쪽으로 직항을 하여 동방으로 가자는 안이 나오게 되었다.

그 항로를 가장 적극적으로 믿고 추진한 사람이 콜럼버스(C. Columbus : 1451~1506)이다. 조국인 이탈리아에서 수로 개척을 위한 후원자를 찾지 못한 그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이사벨 여왕을 만났다. 당시 스페인은 1454년에 발표된 교황의 교서로 인해 인도양의 항해에서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왕은 교황의 교서와 상관없고 최강 해군을 자랑하는 포르투갈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대서양 항로에 흥미를 느꼈다.

콜럼버스는 독실한 기독교(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자주 어떤 일을 종교적으로 해석하거나 말하곤 했는데, 이사벨 여왕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이 굳건한 신념은 성경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자신이 가는 길은 이사야 11장 10절에 암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더하여 그는 자기가 새로 발견하고 정복한 모든 것을 스페인 왕에게 바칠 것을 굳게 말함으로써 여왕의 환심을 샀다. 마침내 설득된 왕은 전쟁에서 사용하던 배 세 척과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1492년 8월3일, 콜럼버스는 배 세 척과 아흔 명의 선원을 인솔하고 꿈에 부풀어 중국과 인도를 향해 출항했다. 망망한 바다를 지나 작은 섬에 상륙한 그는 그 섬 이름을 ‘성스러운 구세주’라는 뜻의 ‘산 살바도르’라고 명명한 다음, 그곳이 스페인 왕국의 영토임을 선언했다. 그곳에는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다음 해 3월에 그는 원주민 여섯 명과 나름 진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스페인 왕에게 돌아와 큰 환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서 발표함으로써 유럽 전역에서 큰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신대륙 발견은 “천지 창조 이후 예수의 강림과 십자가 사건 외에 최대의 역사적 사건”으로까지 평가받았다.

스페인 왕의 신임을 얻은 콜럼버스는 열일곱 척의 배와 1500명의 꿈에 부푼 사람들을 태우고 2차 항해를 떠났다. 1493년 11월3일, 그에 의해 도미니카라고 명명된 섬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선원들을 총으로 무장시켜 원주민 마을을 급습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어 1494년에 귀국했다.

하지만 기대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페인 왕은 크게 실망했다. 콜럼버스는 1498년에 제3차 항해를 하고, 1502년에 제4차 항해를 하지만 남미의 여러 섬들을 발견하는 것 말고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는 스페인 왕을 비롯한 각계의 신망을 잃었고, 폐인이 되어 한 시골 마을 성당에서 1506년에 병들어 죽었다.

콜럼버스는 뼛속까지 신앙심이 아로새겨진 철저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광영’이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으며, 자신의 계획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 두드리라 열어 주시리라’라는 성경 말씀에 부합”한다고 믿었다. 그는 한 편지에 “무슨 계획이든지 주님께 봉사하려는 신성한 목적을 위하여 올바른 것이라면 주님의 이름으로 그 계획은 이루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다. 그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400주년이 되던 해에 사람들은 교황청에 콜럼버스를 성자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는 청원을 올렸다. 청원서는 말한다. “육지와 바다에서 성모 마리아의 영광을 찬양하고 죄 없는 마을을 건설한 사람은 주님의 완전무결한 신봉자, 정신과 진실의 숭배자인 콜럼버스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 달랐다. 제2차 항해 때 원주민을 처음 노예로 삼은 이래 그의 노예장사는 계속되었다. 그가 원주민 마을을 급습하면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간신히 악마의 손을 피한 그들 순박한 사람들은 가족과 집을 잃고 마을을 떠나 원시림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은 유럽에 병균을 가져와 의도적으로 원주민을 감염시키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2년 안에 3분의 1을 병사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마리엔 왕국에 도착했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은 신기한 배와 이상한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여겨 성대한 만찬을 베푸는 등 그들을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그들 때문에 위기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 일행은 원주민촌을 급습, 전 주민을 살해하고 그들의 왕국을 점령해버렸다.

도미니카 섬의 중심부에 있던 하라과 왕국에서는 자신들을 환대한 원주민들을 불에 태워 죽였고, 불을 피해 집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은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어떤 군인이 도망 나온 아이를 살리려 하자 다른 군인이 그 아이를 창으로 찔러 죽이는 일도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콜럼버스의 도착은 악마의 도착 그것이었다. 사실 아메리카는 처음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그들이었고, 그들은 평화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온 ‘신앙인’ 콜럼버스는 악마, 살인자, 약탈자, 배신자, 강간자 이외의 그 누구도 아니었다.

콜럼버스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종교적 신념이라는 ‘거룩(聖)’에 기반한 ‘악’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선’이다. 선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거룩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거룩한 악’은 ‘보통의 악’보다 오히려 더 잔혹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행위가 거룩한 신, 또는 성스러운 진리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교인으로서의 우리는 콜럼버스, 그의 선원들, 스페인 왕, 교황 등을 움직인 힘은 신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탐심이라는 심독(心毒)이었고, 그 심독으로부터 진심(瞋心)이라는 잔혹한 심독이 나온 것뿐이다. 그리고 다시, 진심으로서의 잔혹성의 근거는 치심(痴心)이라는 심독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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