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피에타 론다니니
20. 피에타 론다니니
  • 주수완
  • 승인 2018.11.06 13:41
  • 호수 1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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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모습으로 완성을 표현한 미켈란젤로 최후의 작품

밀라노 스포르체스코성에
미켈란젤로 마지막 피에타

피에타 반디니 직접 부수고
재 작업한 피에타 론다니니

예수의 팔 위치 알 수도 없고
마리아가 업힌 듯한 기묘함

마리아 얼굴은 윤곽도 없어
미완성의 작품으로 알려져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보탤 것 없는 묘한 느낌

정교함 극치인 석굴암 조각
감실 속 유마힐 조각만 투박

불완전 존재의 상징적 표현
완벽한 미완성의 역설 감동
‘피에타 론다니니’, 1555~1564년. 195㎝.

밀라노. 명품의 도시이자 라 스칼라 오페라좌가 있는 곳. 미술사학자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인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곳.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화려한 패션 상가 사이에서 고풍스럽고 거대한 밀라노 대성당이 중심을 잡아주는 도시. 그러나 필자가 밀라노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인 ‘피에타 론다니니(Pieta Rondanini)’를 보기 위해서였다.

‘피에타 론다니니’가 소장된 스포르체스코 성은 15~16세기 밀라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를 장악했던 스포르차(Sforza) 가문의 거점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곳 스포르차 통치하의 밀라노로 왔던 것은 그때까지 피렌체에서 이렇다 할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에게 스포르차 가문이 문화예술의 후원자로 자처하며 성장시켰던 밀라노가 새로운 기회의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메디치의 피렌체와 달리 스포르차의 밀라노 성은 궁정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높은 감시탑이 솟아있는 성채처럼 견고하고 위압적인 건물이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많은 걸작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피에타 론다니니’는 별도의 전시실에, 그것도 무료로 전시되고 있다.

오로지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마련된 전시실은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화려한 공간은 아닐지 모르지만, 한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치고는 무척이나 과하게 넓은 공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켈란젤로를 대하는 태도이고, 나아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이에 부응하듯 비록 단 한 점이라 할지라도 그 공간이 결코 허하게 보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옆에서 본 피에타. 두 개의 팔이 보이지만 어떤 것이 예수의 팔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다 채워지지 않는 넓은 전시실의 일부 허공은 제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미사곡 같은 성가가 은은히 채워주고 있었다. 피렌체에서 줄서기에 고생했던 터라 이 걸작을 보기 위해 또 줄을 설 줄 알았지만, 의외로 현지인도, 관광객도 많지 않아 모처럼 집중해서 피에타를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전시실에는 초·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한 선생님이 이 피에타에 대해 조용히 설명하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지만 괜찮았다. 나는 마치 먹이를 두고 맴도는 늑대처럼 피에타의 주변을 몇 바퀴고 돌며 감상을 했다. 그것은 감상이었지만 계속 하다 보니, 마치 무의식 중에 부처님 주변을 오른쪽으로 도는 우요 의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미완성이어서 작품의 세부를 파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앞서 ‘피에타 반디니’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그 작품은 대략 1546년에 시작해서 1555년경에 부숴버리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끝났는데, 이 ‘피에타 론다니니’는 아마도 그 직후, 혹은 그 직전에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는 그가 세상을 떠나던 1564년까지 꾸준히 이 작품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도대체 미켈란젤로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부숴버린 ‘피에타 반디니’로부터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많은 고민을 하고 주저하다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던 것일까? 그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면 볼수록 이 작품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도무지 예수의 팔이 어떻게 위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지금 현재 남아있는 대리석 위에 어떻게 예수의 두 팔을 조각할 생각이었는지 계산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성모마리아는 뒤에서 예수를 부축하고 있어야 하는데, 왜 특별히 고안된 어떤 단 위에 올라가 있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두 분의 네 팔 중에서 제대로 보이는 것은 성모의 왼팔이다. 이 왼팔은 예수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 아니, 부축을 하는 손이라면 당연히 예수의 몸을 아래서 위로 받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어떻게 손이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우리가 아는 천재 미켈란젤로는 나이가 들어 잠시 이 작품에서 결정적 실수를 했는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감당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예수와 성모가 서있는 자세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예수의 두 다리는 맥없이 넘어지는 사람 같기는 하지만, 앞서 본 피에타처럼 완전히 힘이 풀린, 강력한 중력장 안에 쓰러진 그런 격정은 찾아볼 수 없다. 다 깎아내지 않았는데도 이미 너무 가느다란 두 다리는 설령 완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막 세상을 떠난 건장한 청년의 몸이 스러진 것이 아니라, 오랜 병상에 누워 있어 바짝 마른 연약한 다리처럼 보였을 것이다.
 

경주 석굴암 감실조각상 중 유마힐.

성모도 마찬가지다. ‘피에타 반디니’에서도, ‘피에타 팔레스트리나’에서도 그들이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등장인물의 얼굴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 유독 성모의 얼굴은 미완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미켈란젤로는 손을 대지 못했다. 성모의 모습치고는 너무 아름답다고 비판까지 받았던 바티칸의 피에타에서와 달리 그는 마치 성모의 얼굴에서 모든 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머뭇거린 사람처럼, 그렇게 이 ‘피에타 론다니니’에 등장하는 성모의 얼굴도 아직 가면을 벗지 않은 듯 남겨두고 말았다.

그러나 계속 이 작품을 빙빙 돌면서 한 가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성모가 예수를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보아도 오히려 예수가 성모를 업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미켈란젤로는 피에타가 아닌 다른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 같다. 분명 예수의 두 다리의 힘이 풀려 마치 어디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여 그 고운 두 다리가 흙바닥에 긁히지나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힘없이 땅에 끌리고 있다. 이런 다리로 성모를 업고 갈 수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상체를 세워 그의 어머니 성모를 업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성모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에 대응해 성모는 등에 업혀 아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 왠지 둘 다 서로를 염려하는 듯이 보인다. 예수의 팔이 보이지 않는 것은 뒷짐 지듯이 뒤로 돌려 어머니 성모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마 그렇게 마감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빙빙 돌다보니 더더욱 미켈란젤로의 고민을 알 것 같았다. 그 스스로 다 완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거기서 무엇인가 더 덜어낸다는 것은 오히려 완성이 아니라 파괴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덜 들어내고도 더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리라. 완전한 죽음을 표현한 바티칸의 피에타에서 시작한 그의 피에타의 여정은 마치 함께 천국으로 건너가는 이 마지막 피에타에 이르러 완벽한 드라마가 되었다. 여기에 무엇을 더 더할 수 있을까. 아, 차라리 미켈란젤로가 나타나 말해주길 바랬다. “이보게, 그건 미완성이 아닐세.”
 

여러분 중에 유럽여행을 동경하는 분이 있다면, 바로 그런 유럽을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저런 선생님과 학생들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석굴암의 상단 감실 속 유마거사의 상이다. 나머지 감실 속의 보살상들은 정교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유마거사만큼은 그냥 돌덩이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투박해 보이기만 한다. 혹자는 이것이 미완성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완성된 것이길 바란다. 그 편이 더 이해가 된다. 16세기 르네상스의 거장이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남긴 것처럼, 8세기 중반 신라의 장인이 추상의 멋을 알고 의도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유마거사는 위대한 불자이지만, 분명 한 인간이었다. 함께 묘사된 보살들, 특히 그와 대등하게 대담을 나눴던 문수보살에 비해서도 그는 그저 인간이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보살은 감히 넘보지 못하지만, 인간 유마힐을 넘보며 닮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들의 세계 속에 끼어있는 유일한 인간인 유마힐을 조각가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투박하게 남긴 채 정을 내려놓았으리라. 이렇게 완벽한 미완성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을까.

필자가 이런 느낌을 받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 초중생에게 피에타를 설명하던 멋진 이태리 선생님의 설명이 그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한 시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에서는 전공자라 할지라도 대학생을 상대로 한 작품 앞에서 한 시간 이상 떠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초중생 앞에서 이 작품을 한 시간이나 설명하다니 저 선생님은 누구일까? 그리고 진지하게 그 설명을 듣는 학생들의 눈빛은 또 무엇인가! 비록 그 설명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팔을 움직여 피에타의 예수의 동작을 흉내 내었을 때, 나는 내가 느낀 바를 그가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태리 밀라노의 명품이 결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그 이태리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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