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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기자명 희유 스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슬픔보단 죽음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양한 삶 어울어짐에 감사해야

지난 주말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 우리 서울노인복지센터는 60여명의 직원들과 3000여명의 어르신들이 매일 이용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지난 주말 한 직원이 결혼식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들을 축복하기 전 센터에 잠시 들러 못다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슬픈 얼굴로 “센터에서 18년간 봉사 해주신 어르신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 전 서울노인영화제에 어르신영상자서전을 출품한 것이 당신의 유품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였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열심히, 그리고 이것저것 욕심을 내면서 생을 살아간다. 죽음은 나의 일이 아닌 요원한 일인양 모른 척 살아간다. 젊은 시절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저 막연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목전의 일이 되어 있다. 수행자는 자주자주 죽음을 보아야 무상함을 깨닫는다고 일러주신 은사스님의 말씀이 이리도 새록새록 가슴에 와닿는 주말이었다. 어느 청춘은 새로운 인생을 향한 삶에 환희하는 반면 어느 초로는 죽음을 맞아 슬픔에 진저리 치는 그런 일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獨有一物常獨露(독유일물상독로)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인 듯하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뜬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죽고 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네.

오늘은 이 말씀이 어찌 이리도 와 닿는지…. 생사를 따르지 않는 그놈을 홀연히 알아지는 때가 있기를 바라면서 어르신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한 젊은 청춘의 새로운 삶을 위한 축원을 해본다. 부디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닌 도리를 알아서 여여한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다양한 삶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를 보낸다.
 

희유 스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못 가져서 안달을 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시시비비를 한다. 그렇게 열여덟 해를 봉사활동하시고 가실 때는 아무 소식 전하지도 못하고 떠나시면서 남아 있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시는 그분. 생전 늘 웃으시면서 영화관에서 관객을 맞이하시는 모습이 더욱 애달픈 주말이었다. 남겨진 지인들이 기운을 잃지 않고 그 어르신이 그렇게 떠난 것에 그리 서운해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것을 보고 아직 젊은 청춘인 사회복지사들도 너무 슬픔에 가슴 아려하기보다는 어르신들의 지혜를 배우기를 바란다. 그렇게 청춘들을 다독이며 나 자신도 생사가 일여인 그 도리를 단박에 깨달을 수 있기를 부처님 전에 엎드려 기도한다.

희유 스님 서울노인복지센터 시설장 mudra99@hanmail.net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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