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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얼어붙은 국민 가슴 녹여준 길상사 개원법회

기자명 이병두

걸림 없는 우정 닮은 이들 많아지길

1997년 서울 길상사 개원법회에
참석해 축하해준 김수환 추기경
우리 사회 평화메시지 전달 앞장

서울 길상사 개원법회에서 나란히 바닥에 앉아 있는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서울 길상사 개원법회에서 나란히 바닥에 앉아 있는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김영삼 정권 말인 1997년 초부터 “설마, 설마…”하던 외환위기가 현실이 됐다. “위기가 아니다”고 고집하던 정부도 어쩔 수 없게 되어 11월22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IMF의 처분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험난한 시절을 맞은 것이다. IMF 실사단의 구조조정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금융기관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극소수 부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은 여느 겨울보다도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12월18일 열리는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정치열풍에 휩싸이고 각 후보들 사이에 비난‧비방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그러나 대선을 나흘 앞둔 12월14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법회에서의 아름다운 만남을 전하는 사진이 국민들의 가슴을 모처럼 따뜻하게 해주었다.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존경받아온 김수환 추기경이 회주 법정‧총무원장 월주 스님과 나란히 법당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은 ‘평화와 화합, 국민행복’을 말하는 천 번, 만 번의 말과 글보다 큰 효과를 내었다.

추기경은 “아름다운 사찰이 도심 한 가운데 들어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길상사가 맑음과 평안의 향기가 솟아나는 샘터로 모든 이에게 영혼의 쉼터와 같은 도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는 짧은 축하인사를 건넸고, 법정 스님(이하에서는 스님)도 “이 절을 불자뿐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개방해 맑고 향기로우면서도 가난한 절로 키워 나가겠습니다”라고 짧게 화답하였다. 사진을 보면 바닥에 앉는 데 익숙하지 않은 추기경의 어색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잔잔한 미소에서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뒷자리에서 박청수 교무가 환하게 웃는 모습도 아름답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이 차이와 서로 다른 종교의 벽을 넘어 돈독한 우정을 나누어오던 스님과 추기경은 그 뒤로도 서로 길상사와 명동성당을 오가며 아름다운 모습을 대중에 선사해준다. 두 달 뒤인 1998년 2월24일 축성 100주년을 맞이한 명동성당의 초청강연에서 스님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과 겸손을 언급하며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말로 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05년 5월15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길상사가 천주교 운영 ‘성가정입양원’에 수익금 전액을 전달하기로 한 ‘사랑과 화합을 음악회’에 함께 자리한 추기경이 감사인사를 전할 때에도 스님과 도량을 가득 메운 3000여 청중들이 활짝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다. 추기경과 스님이 걸림 없이 아름답게 나눈 우정을 닮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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