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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오빈의 ‘달마도(達摩圖)’

기자명 김영욱

구불구불한 선의 과장된 바위
아름답지만 동적인 느낌 선사
곧게 앉은 달마는 고요할 뿐

오빈 作 ‘능엄이십오원통불상(楞嚴二十五圓通佛象)’ 중 ‘달마’, 17세기 초, 비단에 먹과 엷은 채색, 62.3×35.3㎝,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출처: ‘狀奇怪非人間’ 2012년).
오빈 作 ‘능엄이십오원통불상(楞嚴二十五圓通佛象)’ 중 ‘달마’, 17세기 초, 비단에 먹과 엷은 채색, 62.3×35.3㎝,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출처: ‘狀奇怪非人間’ 2012년).

虛負光陰眞可惜(허부광음진가석)
世間人老是非中(세간인로시비중)
不如端坐蒲團上(불여단좌포단상)
勤做工夫繼祖風(근주공부계조풍)

‘헛되이 세월을 저버리는 것은 진실로 애석한데 세상 사람들은 시비 속에 늙어가는구나. 부들방석 위에 단정하게 앉아 부지런히 공부하여 조사들의 풍을 이음만 못하네그려.’ 선수(善修, 1543~1615)의 ‘경세(警世)’.

기괴하다. 그러나 아름답다.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선들로 이루어진 암석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것은 마치 달마 내면에 응축되었던 정신이 분출된 것처럼 보인다. 달마를 바깥세상과 단절시킨 기괴한 암석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이하고 과장된 바위는 동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그 속에 앉은 고요하고 엄정한 달마는 정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6세기경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는 불가의 진리를 두고 시비에 얽매이고 분별에 집착하던 이들의 모습에 탄식했다. 자신들의 세월을 시비와 분별 속에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숭산으로 건너가 단정히 앉아 시절 인연을 기다렸다. 명대 말기에 활동한 오빈(吳彬, 약 1573~1620 활동)의 ‘달마도’는 숭산에서 곧게 앉아 벽을 응시했던 달마를 보여준다. 부들방석 위에 흔들림 없이 곧게 앉은 그의 모습이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세상에는 시비가 가득하다.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며 끊이지도 않는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시비에 관여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분명히 가려지길 원한다. 그것은 중생뿐 아니라 속세를 벗어난 구도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오래전에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주체를 바람과 깃발로 분별하며 시비를 가렸던 두 스님이 있었다. 이들을 본 혜능은 “오직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 마음”이라고 말해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마음이 곧게 서 있으면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휴정(休靜, 1520~1604)이 ‘희(熙)’라는 장로에게 보낸 시를 보면 “10년을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城)을 지키니, 깊은 숲속의 새들도 길들어져 놀라지 않네”라는 구절이 있다. 그가 말한 ‘단좌(端坐)’는 ‘곧게 앉았다’는 뜻이다. 그저 신체만 곧게 앉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굽거나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곧은 기준을 세우라는 말이다.

달마의 단좌는 혜능과 휴정의 가르침과 같다. 세속의 시비에 휘둘려 분별하지 말고, 시비를 떠나 분별을 잊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시비와 분별은 끝이 없다. 지허 스님의 말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시와 비로 구성된 양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저 시비의 갈림길 앞에서 단정히 앉아 마음이 치우치지 않도록 부지런히 애쓸 따름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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