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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스님들 살림살이

  • 법보시론
  • 입력 2018.11.19 10:51
  • 수정 2018.11.19 13:23
  • 호수 1465
  • 댓글 0

법보신문이 창간 30주년을 기념하는 법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축하하고 축하할 일이다.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해야 할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의 세월이 쌓인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무게는 때로는 내일을 향한 원력(願力)의 버팀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여곡절로 쌓인 간난으로부터의 신고(辛苦)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전반의 200년이라고 달랐을까만, 후반의 250년 역시 사찰, 그리고 그 사찰에서 내일을 향한 원력을 버팀목으로 온갖 간난을 지탱해야 했던 스님들의 살림살이 역시, 신고(辛苦)라는 그 한마디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고(辛苦)라고 형용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거친, 사찰의 살림살이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사찰들은 제법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국보며, 보물이며, 전각들 같은 쉽게 눈에 뛰는 동산이나 부동산은 물론이고, 토지 그 자체만 따져도 쉽게 헤아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재산, 곧 살림살이는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떻게 계승되었던 것일까?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많은 이들이, 불교계 혹은 더 좁혀서 전통사찰들이 가지고 있는 토지들이 국가 혹은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라고 오해한다. 물론 그런 토지들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일부분에 해당할 뿐이고, 그것마저도 국가 혹은 왕실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용도로 증여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곧 정당한 대가에 따른 토지라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막대하다면 막대할 수 있는 토지가 재산으로 형성되었을까? 정답은 불교 혹은 사찰이 소유하는 토지가 개인의 사유가 아니라, 사찰 혹은 그 사찰을 중심으로 형성된 승가공동체에 귀속된 깨끗한 재물 곧 삼보(三寶)에 귀속된 삼보정재(三寶淨財)라는 기본적 성격에 있다. 조선후기 불교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을 서산대사 휴정(西山休靜, 1520 –1604)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쓴 선가귀감(禪家龜鑑)에는 “불도(佛道)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는 것을 독약 먹듯이 하고, 시주 받는 것을 화살 맞는 것처럼 해야 한다. 폐물이 과하거나 말이 달콤하다면, 불도를 닦는 사람이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단 서산대사의 말만은 아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출가자라면 반드시 경계로 삼는 금과옥조이기도 하다. 

부처님을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위해서, 승가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중생의 구제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삼보정재이기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출가자라면 삼보에 귀속된 정재를 보존하고 지키기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시주받은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삼보에 귀속된 정재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 스님들의 일반적인 의식이다. 당장 배가 고프고 사용할 때가 있어도, 먹고 또 사용하는데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볼 수밖에 없는 재물이 바로 절 안의 재물인 것이다. 그러니, 쓰는 것보다 쌓이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1657년, 조선의 관료들은 “전답을 소유한 승려가 죽은 뒤에는, 전토(田土)는 여러 족속(族屬)에게 귀속하고, 잡물(雜物)은 여러 제자에게 전승된다.”고 규정을 마련하여, 승려의 사유 토지가 사전(寺田) 곧 사원토지로 바뀌는 것을 금지하였다. 사찰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는 대책이었다. 

하지만 국가 혹은 관료를 비롯한 양반지배층이 필요로 하는 종이 같은 많은 고가물품 중 상당수의 생산자가 승려였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원의 수공업을 유지하고, 한편으로는 사원에 귀속되는 재산이 증식되는 한 원인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대해 사찰을 유지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여러 종류의 사찰계(寺刹契) 역시 사원 재산을 형성하고 증가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어느 쪽이든, 일단 정재(淨財)로 귀속된 재산은 승가공동체의 재물에 대한 태도의 특성상 소비되기보다는 축적되는 것이 더 일반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삼보정재와 그 정재를 대하는 스님들의 살림살이 태도가, 숭유억불의 굴곡진 시대에도 사원이 토지를 유지하고 증식하는 원인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살림살이가 아니라, 스님들의 고된 노동이 오늘날 전통사찰의 살림살이를 남기게 된 원천이었던 것이다.

석길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huayen@naver.com

 

[1465호 / 2018년 1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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