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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길상화 김영한의 아름다운 회향

기자명 이병두

길상사는 백석에 대한 사랑의 승화

기생 진향의 백석 향한 사랑
죽는 날까지 가슴 속에 간직
막대한 재산 미련 없이 보시

길상화 김영한 보살의 어린시절 모습.
길상화 김영한 보살의 어린시절 모습.

서울 성북구에 자리 잡은 길상사는 독재정권 시절 권력자들이 밤놀이를 즐기던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이 있던 곳인데, 그 주인 김영한 여사가 당시 시가 1000억원에 이르는 대지와 건물들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탈바꿈한 것이다.

김영한의 일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이 열여섯에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다 실패하고 서울로 올라와 조선권번에 들어가 궁중아악과 가무를 익혔고, 시‧수필‧글씨‧그림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자랑하는 일류 기생이 되었다. 이 시절 그의 능력을 알아본 신윤국(흥사단과 조선어학회에서 활동)과 만나 그를 스승으로 여기게 되면서 삶에 다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스승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스승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함흥감옥으로 찾아가지만 면회를 거절당하자, “기생이 되면 스승님을 만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시 기생의 길을 택한다.

이 때 여고 영어교사였던 시인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첫 만남에서 백석은 그의 손을 잡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것”이라 다짐하고 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집안 반대로 실패하고 백석이 만주로 떠나면서 둘의 짧은 만남은 끝나고 영원한 이별이 된다. 그 뒤 결코 잊을 수 없는 옛 사랑을 그리며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백석에 대한 그의 사랑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식지 않았고 막대한 재산을 길상사와 카이스트‧백석문학상 기금 등으로 기부한 것도 아마 백석에 대한 사랑을 승화시켜낸 것이리라.

“대원각을 시주하겠다”는 그와 “받지 않겠다”는 법정 스님 사이의 공방은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 길상사 개원법회에서 그가 스님에게서 염주 하나와 법명 ‘길상화(吉祥華)’를 받은 뒤, 경내를 가득 메운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에도 대중들은 숨을 죽였다.

길상사 개원 2년이 지난 1999년 11월14일 그가 육신의 옷을 벗은 뒤, “죽으면 화장해 눈 많이 내리는 날 길상사에 뿌려주세요”라던 유언대로 화장하여 유골을 12월14일 첫 눈이 내리던 날 길상사 뒤쪽 언덕에 뿌렸고, 경내에는 작은 공덕비 하나를 세워 그의 순수한 사랑과 보살행을 기리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어느 기자가 물었다. “천억원대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천억원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이 사진은 궁중무를 추던 어린 기생 진향의 모습이다. 길상화 김영한, 기명(妓名) 진향처럼 순수한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였고 환락의 진흙탕에서 ‘진짜 향기’를 피운 멋진 여인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65호 / 2018년 1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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