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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에 마음 움직이면 곧장 참회하라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㉕

사실진상 마음속으로 지향하며
할 수 있는 만큼 최선 다해야
평등·청정·대자비심으로 대하면
이체중생 진실한 이익 얻게 해

정공 스님은 중생은 괴로움을 겪지만 보살은 지옥에서도 괴로움을 겪지 않는 것이 다르다고 강설한다.
정공 스님은 중생은 괴로움을 겪지만 보살은 지옥에서도 괴로움을 겪지 않는 것이 다르다고 강설한다.

“극락세계보살은 부처님 국토를 두루 다니면서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또한 구하거나 구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없느니라(遍遊佛剎 無愛無厭 亦無希求不希求想 亦無彼我違願之想).”

극락세계보살은 모든 부처님 국토를 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어떤 부처님 국토는 칠보로 장엄된 정토이고, 어떤 부처님 국토는 매우 혼탁하고 열악한 예토입니다. 극락보살은 정토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고 애착이 없습니다. 지옥 아귀 축생의 예토에 가서도 싫어하지 않고 마음이 평등합니다. 중생은 괴로움을 겪지만 보살은 지옥에서도 괴로움을 겪지 않습니다. 중생은 분별집착이 있어 괴로움을 겪지만, 보살은 분별집착이 없어 괴로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보살이 지옥에서 괴로움을 겪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진리를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고난 받는 사람과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고통 받고 있는데 나도 너처럼 괴롭다고 말한다면 이는 거짓입니다.

여행을 다닐 때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마음이 오염된 것입니다. 여행을 다닐 때 선정과 지혜를 닦아 명백하게 볼 수 있다면 곧 지혜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다면 곧 선정입니다.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사람과 일과 물건을 접촉하는 동안에도 선정과 지혜를 닦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당신을 화나게 해도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으면 일심불란(一心不亂)을 닦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당신에게 선지식으로 그가 없다면 인욕바라밀을 어떻게 성취하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이 달콤한 말을 해도 애착심이 생기지 않고, 시비를 붙여도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 이는 모두 선정과 지혜를 성취하는 공부입니다.

정토종의 일심불란과 염불삼매는 모두 이 단락에서 말하는 수행입니다. 만약 시시비비나 쓸데없는 뒷말을 듣고서 마음이 움직이면 곧장 참회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또 잘못을 저질렀네, 또 경계를 따라 굴려버렸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대하며 물건을 접하는 곳에서 생각마다 미혹하지 말고 깨어있으면 언제 어디라도 모두가 선지식이고, 좋은 선생님입니다.

희구(希求)는 희망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실망이 반드시 따르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에 대해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하여도 반연(攀緣)이고 구하지 않아도 반연입니다. 어떤 일이든 모두 인연에 따라야 하고 연분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보살행은 중도로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일체 인연에 따를 뿐 기대어 인연을 맺지 않습니다.

방금 타이베이협회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간풍문 거사가 저에게 죽는 소리를 했습니다. “스님, 현재 협회 살림이 매우 궁핍하여 경전 인쇄할 돈이 없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왜 원칙을 지키지 않나요.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인쇄하고 돈이 없으면 인쇄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 얼마나 즐겁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구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얼마만큼은 인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고생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배움은 바로 깨달음을 배우는 것이고 즐거움을 배우는 것입니다.

‘또한 극락세계보살은 남과 나의 구분이 없고 거스르고 원망하는 생각도 없느니라. 왜 그러한가? 저 보살들은 일체 중생에게 큰 자비심이 있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까닭이니라(亦無彼我違怨之想 何以故 彼諸菩薩 于一切衆生 有大慈悲利益心故).”

이 경문은 모두 극락세계보살이 수행하는 원칙으로 우리들이 마땅히 학습해야 합니다. 설사 실천하지 못할지라도 이것이 사실진상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지향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최선을 다해 실천해나가면 그만큼 잘 되게 마련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어떻게 중생을 이롭게 하는지 설명합니다. 앞에서는 자신을 이롭게 함에 속하고, 여기서는 남을 이롭게 함에 속합니다. 남을 이롭게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심 청정심 대자비심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남과 나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이르십니다. 이는 인사(人事) 상의 평등으로 자신과 남을 구분하지 않음입니다. 중생과 부처는 일체이고, 자신과 남은 둘이 아닙니다. 이는 중생을 이롭게 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거스르고 원망하는 생각은 흔히 말하는 좋아하고 싫어함입니다. 중생은 좋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싫다고 말할 뿐입니다. ‘위(違)’는 일반적인 도리를 거스르는 것이고, ‘원(怨)’은 거스를 뿐만 아니라 원망하고 심지어 원한을 품는 것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경계를 만나면 쉽게 이런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생각은 모두 무시이래의 번뇌습기로 바깥 경계가 현전하면 이 습기가 그것에 이끌려 나옵니다.

“이 또한 없다”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보살의 선정력은 매우 깊어서 바깥경계에 움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살의 선정 공부는 깊고, 보살의 지혜는 깊고 넓어서 일체중생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자성에서 바라보면 일체 중생은 평등하지 않음이 없고 선량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단지 무시겁 이래 삿된 번뇌에 미혹되어 이렇게 변하였을 뿐입니다. 마치 깨어 있는 사람, 아주 이지적인 사람, 사랑스런 사람이 술 취한 사람들과 한 곳에 있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며, 조금도 예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그는 본래부터 아주 좋고, 아주 사랑스러워 술에 취해도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생은 미혹전도되어 곤드레만드레 취해 비틀거리는 술꾼과 같아 보입니다. 보살은 언제나 또렷이 깨어 있습니다. 보살은 깊은 지혜가 있어 이들 중생을 절대 책망하지 않습니다. 중생이 어떻게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될 것입니다. 중생은 습기가 매우 무겁기 때문에 때때로 나쁜 생각이 들고 나쁜 행위를 저지릅니다. 불보살은 절대 책망하지 않고, 마음이 평등합니다.

왜 보살은 거스르고 원망하는 생각을 지닌 중생을 책망하지 않습니까? 이들 보살은 마음속에 대자비심을 지녀서 평등하고 분별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비심이 있지만, 이들의 자비는 애연자비(愛緣慈悲)입니다. 내가 그를 기쁘게 하고 사랑하면 나에게 자비롭지만, 그를 기쁘게 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자비롭지 않습니다. 부처님과 대보살께서는 무연자비(無緣慈悲)로 중생에게 조건 없는 자비를 베푸십니다. 극락세계보살은 대자비심을 간직할 뿐 아니라 일체중생을 도와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합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65호 / 2018년 1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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