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21.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 주수완
  • 승인 2018.11.20 10:44
  • 호수 146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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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의 늑골 궁륭이 보여주는 고딕건축의 웅장함 일품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이던
1386년 고딕양식으로 시작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유행하던 돔 형식으로 선회

결국 나폴레옹 점령시기에
고딕양식으로 마무리 지어

뼈대가 하중을 받치는 고딕
목조건축에서 시작된 방식

부석사 무량수전의 목부재
고딕성당 공중부벽과 비슷

빛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
사찰의 꽃살문과 매우 유사
밀라노 대성당의 내부.
부석사 무량수전의 내부.

두오모 밀라노. 즉, 밀라노 대성당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한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성당이 성 베드로 성당이지만, 이것은 로마 안에 있으면서도 별도의 나라이기도 한 바티칸에 속하기 때문에 제외했을 때 밀라노 대성당이 가장 큰 규모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 베드로 성당이 더 크다고는 해도 체감하기로는 밀라노 대성당이 더 웅장하고 위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고딕성당이 보여주는 복잡하고 정교한 그러면서도 하늘을 찌르는 듯한 속성 때문이리라.

이렇게 크고 웅장한 대성당이지만, 이미 피렌체의 두오모를 보고난 터인지라, 그 두오모가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고딕양식을 한편으로는 이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고딕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흔히 샤르뜨르 성당을 그 시작이자 대표적인 건축으로 손꼽는다. 밀라노 대성당이 짓기 시작되던 1386년 무렵에는 프랑스가 영국과 더불어 유럽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 대성당 역시 프랑스에 버금가고 싶었던 밀라노 사람들의 자존심의 발로로서 프랑스 고딕양식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1389년에는 실제로 프랑스 건축가인 니콜라 드 보나방튀르 (Nicolas de Bonaventure)를 초빙해와 프랑스 고딕양식을 적극적으로 구현하였고, 10년 뒤에는 장 미뇨 (Jean Mignot)라는 건축가를 재차 불러와 공사를 추진했다. 당시 미뇨는 기존에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해왔던 작업이 매우 불합리한 것이고 무너질 위험까지 있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방식대로 뜯어고쳤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기존의 공사가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아마도 이탈리아 사람들의 프랑스에 대한 동경, 그리고 반대로 프랑스 사람들의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멸시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사가 한참 절정에 치닫던 1570년대에는 밀라노 대교구 교구장이 된 카를로 보로메오(Charles Borromeo, 1538~1584)가 펠레그리노 티발디(Pellegrino Tibaldi, 1527~1596)를 수석 엔지니어로 앉히고는 프랑스풍 대신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의 건축으로 변모시킬 것을 주문했다. 펠레그리노 티발디는 건축가이자 청동조각가, 화가로서 르네상스 이후인 매너리즘 시기의 작가였다. 그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작가였고, 실제 그가 남긴 벽화들을 보면 언뜻 미켈란젤로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엘 에스코리알 왕립수도원 도서관(El Escorial Library in Madrid) 천장 벽화가 유명한데, 말하자면 르네상스 미술을 스페인으로 수출한 작가였던 셈이다. 이처럼 밀라노 대성당이 처음 지어질 때와는 달리 이제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를 따라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유럽 문화를 선도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미 1527년에는 거꾸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궁전을 르네상스 풍으로 짓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청해갈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창 프랑스풍으로 성당을 짓던 밀라노는 머쓱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밀라노 대성당을 둘러싼 분위기 역시 프랑스 양식이 아닌 이탈리아 양식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미 상당 부분 완성되어 있었던 고딕건축을 갑자기 피렌체 두오모 같은 르네상스 건축으로 변모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1649년 새롭게 수석 건축가가 된 카를로 부치는 다시금 밀라노 대성당을 고딕 양식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마도 이 성당은 문화적 자존심의 문제를 떠나 원래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져야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급기야 1805년에는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장악하면서 프랑스 건축가 프란체스코 소아베를 불러다 카를로 부치의 계획을 보완하여 완연한 프랑스 고딕풍으로 완공을 마무리 짓도록 했다. 그리고 1805년 그는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이후 크고 작은 마무리 공사가 이어졌지만 이때 밀라노 대성당은 사실상 그 모습을 완연히 갖추게 되었다.

밀라노 대성당의 장미창.
동화사 대웅전의 꽃살문.

사실 르네상스 건축과 고딕 건축은 완전히 다른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바티칸 성당의 내부와 밀라노 성당의 내부를 비교해보자. 바티칸 성당은 천정이 아치형태로 되어 있다. 이것은 벽돌 등을 쌓아서 만드는 건축이다. 반면 고딕 건축인 밀라노 성당은 천정이 X자로 교체하는 뼈대가 지나는 늑골 궁륭(리브 보울트) 천정이다. 결국은 두 건축 모두 벽돌이나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이긴 하지만, 고딕 건축은 이 뼈대 부분이 하중을 받는 핵심을 이루는 반면, 르네상스 건축은 천정 전체가 하중을 받는 구조라 할 수 있다. 뼈대를 만들어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은 원래 목조건축에서 시작된 방식이다. 이 목조건축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재료를 돌이나 벽돌로 바꾼 것이 말하자면 고딕 건축 천장의 늑골구조인 것이다. 바티칸 성당이 더 엄청난 크기임에도 밀라노 성당이 보다 웅장하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반복적으로 물결치듯이 흐르는 이 늑골 천정 구조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하중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변환시켜놓은 것 같은 역동적인 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피렌체 두오모가 그 심플함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불멸의 건축으로 평가받기는 하지만, 밀라노 성당처럼 복잡한 구조를 지닌 고딕 건축이야말로 우리에게 인류의 건축이 지나온 발자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나는 다시금 고딕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지붕에서부터 시작된 무게가 어떻게 뼈대를 따라 흐르다 기둥으로 이어지고, 다시금 그 힘이 기둥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하늘에서 내린 은총이 온통 이 건물을 타고 저 지붕 끝에서 나의 발아래까지 그대로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구조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다.

그런 차원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은 매우 고딕적인 건축이다. 무량수전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오로지 대들보, 도리, 기둥이 X축, Y축, Z축으로 어지럽게 오가며 엄청난 무게의 지붕을 받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저 구조체인 이들 목부재들은 마치 고딕성당의 리브 보울트나 공중부벽이 그러하듯이 멋드러진 장식처럼 펼쳐져 있다. 부재가 그저 드러나 있다고 무조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닐텐데, 부석사의 부재들은 그 부재들간의 간격의 미묘한 조절, 굵은 부재와 가느다란 부재와의 조화, 그리고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반복과 질서를 통해 마치 뉴턴의 역학 3법칙을 시각화해놓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러한 코스모스, 즉 질서의 구조를 통해 성당은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을 압축해 시각화했고, 불전건축은 우주의 원리를 상징하는 법의 바퀴를 부처님이 돌리신 것을 시각화하고 있다.

밀라노 대성당은 지붕 위로 올라가는 관광코스가 있어 웅장한 공중부벽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높이가 50m나 되는 곳까지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작업은 피렌체 두오모와 마찬가지로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붕과 천정이 옆으로 밀려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큰 압력을 받고 있는 공중부벽임에도 사실상 바라볼 때의 느낌은 날아갈 듯한 경쾌함이다. 활처럼 곡선을 그리는 공중부벽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지붕을 위로 튕겨 올릴 것만 같다. 무량수전도 그렇다. 탄력 있는 곡선의 기둥들은 하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탄력의 힘으로 지붕을 위로 살짝 들어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동서양의 건축가들은 이렇게 내리누르는 힘조차도 하늘로 향한 역설적 힘으로 바꿔보이게 하는데 공통의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다. 고딕성당에 늘 함께 따라다니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역할을 분명히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다.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지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동안 빛은 형태를 지니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빛 속에 숨어있던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에게는 비록 유리를 사용한 창은 없었지만, 이와 유사한 것이 있으니 바로 꽃살문이다. 성당에 사용된 스테인드글라스를 흔히 장미창(rose window)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꽃살문이라고 하니 아마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했던 것인가 보다. 다만 스테인드글라스는 건물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꽃살문은 마치 안에서 발산된 부처님의 말씀이 바깥으로는 꽃의 모양으로 투사되는 개념이어서 그 방향성만 다르다.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꽃살문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예를 들어 대구 동화사에서 만나는 꽃살문의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은 밀라노 대성당 장미창의 아름다움과 자웅을 겨룬다 하겠다.

동양에도 밀라노 대성당에 견줄만한 초대형 불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나라 도다이지(東大寺)의 다이부쯔텐(大佛殿)은 높이가 50m 정도로 첨탑을 제외한 밀라노 대성당의 높이에 못지 않다. 그러나 크기로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밀라노 대성당의 늑골 궁륭이 보여주는 구조미와 부석사 무량수전의 천정부재가 결구되는 구조미는 힘의 분산과 전달이라는 물리학적 원리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건축의 진솔함을 보여주며, 그 건축이 품은 빛은 각각 색과 형태로 표현된 꽃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종교가 추구했던 바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재차 실감하는 데에는 오히려 우리의 사찰건축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65호 / 2018년 1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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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 2018-12-01 16: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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