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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음악을 금기시 여기면서도 찬탄했던 이유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8.11.26 13:21
  • 수정 2018.11.26 13:24
  • 호수 1467
  • 댓글 1

기고-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

홍윤식(불교민속학회장) 동국대 명예교수가 11월26일 ‘경전에 나타난 불교음악과 그 응용’이란 기고문을 보내왔다. 홍 교수는 기고문에서 불교경전에는 석존의 음악관을 조명하고 불교음악의 경전적 근거를 밝히고 있다. 편집자

오늘날 각종 불교행사에서 반드시 불교음악이 연주되거나 불리고 있다. 이는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런 음악들이 어떤 불교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의아심을 자아내게 한다. 즉 별다른 고민 없이 가사만 불교적인 것으로 하였지 그 선율과 박자에서 불교적 감성을 느끼게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같은 문제를 ‘경전에 나타난 불교음악’이란 문제의식으로 접근해 보려 한다.

상원사 동종 비천상
상원사 동종 비천상

경전에 나타난 불교음악에 대한 제 문제

각종 경전에 불덕을 찬양하는 제종의 기사가 주목을 끌게 한다. 특히 불법의 미묘함을 음악적 표현으로 비유하고 있음은 매우 흥미를 끌게 한다. 각종의 악기명, 음악명, 악신(樂神)등은 마치 경전을 음악으로 장식 한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생각건대 여기 이와 같은 경전에 나타난 음악적 자료를 중심으로 불교음악 연구를 위한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론으로 경전에 나타난 불교음악의 서설적 개요를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1) 문헌적 표현으로서 불교음악의 가상
2) 경전에 나타난 악기명과 그 주변
3) 경전에 나타난 음악적 용어의 배경

경전상의 여러 곳에서 우선 석존은 가무 즉 음악을 금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함경에 의하면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제 비구들에게 성현 팔관회의 법을 설할 때에 음악금지의 가사가 보이며 ‘장아함경’의 ‘제11 선생경’에서는 장자의 아들 선생에게 이르기를 여섯 가지 재물을 손상시키는 업이 있으니 기악과 가무에 홀리는 것이라 하여 음악을 금지하고 있다. 경부에서 뿐만 아니라 율부에서도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기사와 같이 석존은 음악을 영원히 인정할 수 없는 금지물로만 생각하였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석존 음악관의 또 다른 한 면을 살핌으로서 보다 올바른 불교음악에 대한 견해를 살필 수 있게 된다.

‘법원주림’ 제36 패찬편 음악부에 의하면 석존 재세시 사위성중의 모든 사람은 각각 스스로 장엄한 기악을 작창하여 불승을 공양하였다고 하며 이에 석존은 기악(伎樂)을 지어 불승을 공양한 공덕에 의하여 미래세 일백겁 중 악도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한편 ‘장아함경’에서는 능히 청청의 음으로 유리에 화하여 여래를 칭탄하며 그 소리가 비화애완(悲和哀婉)하여 만인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하여 음악 예찬론을 펴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석존의 음악 금지와 음악찬양론의 양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살필 수 있을 것인가 흔히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음악교육의 문제를 논하여 양호한 음악이니 속된 음악이라 하여 교육적 효과 면에서 가치기준을 정하게 됨을 본다. 이는 음악의 영향력에 대한 높은 가치를 인정하면서 그럴수록 반작용으로서의 영향력을 우려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지향하는 음악, 다시 말하면 교육적 이상으로서의 음악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석존은 ‘증아함’34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힘으로서 그 음악금지의 이유를 알게 하고 있다. 즉 모든 비구가 식사를 끝낸 이후 음주, 가무, 희소(戱笑), 기악(伎樂)에 대한 일들을 논의하고 있을 때 그 논의 사항에 대하여 그는 속세의 일들로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 것은 오락으로서의 음악을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불교음악이 아닌 음악은 속된 음악으로 금지되어야 하지만 불덕을 찬탄하고 불보살에게 공양드리는 음악은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주림’ 제36 음악부에 8만4천의 기악(伎樂)및 그 음은 널리 3천대천세계에 들리어 그 거문고의 소리 및 묘한 가성(歌聲)은 욕계 제천의 음악을 음폐하여 그 음악의 위력은 모두 법음을 설하여 8천의 보살이 무생인의 위를 얻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불타에 의하여 장려되었다고 하는 음악은 어떤 음악이었던가. 문헌적인 표현으로만 묘사되어진 기술로서 율려학적(律呂學的) 고찰은 불가능한 것이라 하겠으나 그 음악이 무엇을 위한 음악이었던가 하는 음악 미학적 방법론은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경전상에 부처의 경지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광경이라 하여 비유적 기술방법을 쓰고 있음은 예술의 본질에서 파악되어질 예술의 본령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본질이란 직관적이며 언어로 전달될 수 없는 환상을 중요한 원칙으로 하며 그 예술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은 참된 것이며 단순한 공상이 아니란 점에서 종교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종교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경전상에 나타난 문화현상으로서의 예술적 측면을 먼저 생각하고 다음에 종교적 문제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하더라도 그 범주는 광범위한 것으로, 여기서는 음악예술을 중심으로 경전상에 나타난 음악은 어떤 음악이었던가를 규명해 보기로 한다.

경전에 나타난 불교음악

불교음악이란 불교 교단 내에 전해지는 음악과 그 응용을 말한다. 또한 전술한 석존이 장려한 음악의 내용에서 살핀다면 불보살의 공덕을 찬탄하고 공양드리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

‘과거현재인과경’에서는 성도의 환희에 만족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성도 후 제3야 8정도를 사유할 때에는 천고(天鼓)가 스스로 울려 묘성을 발하여 제천은 기악(伎樂)을 연주하고 산화소향(散花燒香)하여 가패(歌唄)로 찬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성도 후의 법열의 경지를 묘사한 것으로 장엄한 광경은 보통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바 음악의 소리에 비유하여 법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묘음(妙音)’ ‘묘법음(妙法音)’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묘음의 기사는 다른 경전상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즉 밀교부 ‘대일경’의 묘음, 묘음천, 묘음악천, ‘금강명경’의 변재 즉 묘음 등이 그와 같은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소리는 보통 인간의 음악이 아니라 천상의 음악이란 것이다. 즉 세간의 제왕에게 백천의 음악이 있다면 전륜왕 내지 제6천상의 기악 음성은 전전하여 천억만 배가 되고, 6천상의 음악은 무량수국의 제7보수중에 발하는 일부의 음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천상음악의 묘음을 널리 설하고 있으며 또한 무량수국에서는 음악은 극락장엄의 한 요소로 이 경에 의하면 청풍이 때로 발하여 5음성을 내며 미묘의 궁상(宮商)이 자연히 상화(相和)한다고 하여 천상음악이 다시 극락 음악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자료에서 밝히고 있는 불교음악은 내용적인 면에서 묘음 법음 천상악 극락장엄악 등으로 파악되고 응용적인 면에서는 불보살의 찬탄 공양 극락장엄 등의 요소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과 같은 경전상의 문헌적 표현으로 나타난 내용만으로 실제 악곡상의 음악은 알 길이 없으나 다만 전술한 불교음악에 대한 서술의 내용에서 음악에 대한 신앙성 및 음악적 감정으로서의 미적 관념에 대한 다소나마의 회답은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묘음이라고 하는 표현성이 흥미를 끌게 한다. 왜냐하면 묘음이란 신앙적인 의미로 수용되기도 하지만 예술적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묘음이란 범어(Gadgade-svara)로 원래 ‘상설음’ ‘선설음(善說音)’의 뜻을 지니며 불보살의 설법교화가 주로 미묘한 음성에 의함을 나타낸 것이라 하여 부처의 한소리가 능히 일체법을 설하여 신앙심을 일으킨다는 불보살에 관한 음성공덕의 위력을 설한 많은 기록이 보인다.

‘법화경’의 ‘묘음품’에 의하면 석존은 묘음의 본뜻을 전하여 과거 1만3천년 간 묘음은 현일체 세간국인 운뢰운왕불에 백천의 기악을 갖고 공양하여 8만4천의 칠보탑을 봉상한 인연에 의하여 이제 정화숙왕지불국에 태어나 그와 같은 신력을 지닌다고 하였으며 또한 묘음의 종종의 신변현(身變現)에 의한 중생구제의 신력(神力)을 설하여 그 신력에 의하여 얻어진 삼매가 현일체색신삼매가 된다고 하였다.

한편 ‘법화경’의 묘음품 묘음의 명의(名義)에 의거하여 기다 요시히데(木田義英)씨는 그의 저서 ‘불전의 내상(內相)과 외상(外相)’에서 “운뢰음왕불이란 불명이 승대(勝大)하며 강용(剛勇)한 음성을 불명화한 것이라 상상하여 그 부처에 기악공양을 한 묘음보살은 역시 묘음음성의 보유자였음이 상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안압지 출토 동판불
안압지 출토 동판불

위에서 살핀 경전상의 묘음을 다시 대별해 보면

1) 불보살의 음성 위력을 나타낸 묘음
2) 밀교경전에 나타난 묘음천의 묘음
3) 묘음보살 내왕품의 묘음

등으로 나눌 수 있는바 이들 3자는 다 같이 묘음 청정음으로서 교화의 능력을 가지며 아울러 그 묘음에 대한 신앙성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면 다음에 이와 같은 묘음으로서의 신앙성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기다 요시히데씨에 의하면 고대 인도에서는 소의 소리를 미묘음(美妙音)이라고 한 일반적인 신앙이 있어 소의 울음소리를 일종의 미묘한 신비성을 지니는 것이라 믿어 소의 소리로서 음악음률의 신비에 의탁하는 것이라 믿어 왔다. 또한 소의 소리를 ‘미음(美音)’ ‘악음(樂音)’이라 믿는 신앙에서 그 미묘한 음성을 가진 자, 즉 묘음자(妙音者)로 발전한 것이라 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소의 소리로서의 묘음에 대한 신앙이 묘성을 가진 자의 묘음으로 전용신앙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경전상에 나타난 묘음의 신앙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전술한 청정묘음으로서의 우성신앙(牛聲信仰)의 배경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밀교경전의 대부분이 고대 인도신앙을 배경으로 성립되어진 것이라 상정(想定)한다면 변재천 등의 묘음은 다소나마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살핀 여러 경전상에 나타난 음악기사를 그 성격적인 면에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1)세간음악
2)불덕찬탄 음악
3)인도 고대 신앙에 의한 음악

등으로 나눌 수 있는바 이와 같은 3분류 흐름의 음악적 관념이 석존 성도 후의 불교음악 형성에 어떤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어 주목된다.

석존의 성도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본다면 분명히 새로운 문화의 가치를 지향하는 중대한 계기를 이루게 한다. 이를 음악문화의 일면으로 국한시켜 본다면 종래 고대인도의 종교음악 및 세속음악을 새로운 가치 관념에 의한 불교음악의 형성을 지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불설무량청정평등각경’에 세간제왕의 기악음악은 차가월왕(遮迦越王)의 제 기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석존 왕성출유 이전의 음악은 인간의 음악이었음에 비하여 성도 후에는 천음악의 묘성(妙聲)으로 가무음곡을 표현하고 있음은 곧 세간음악에서 천음악으로 승화된 불교음악의 형성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전술한 고대 인도신앙에서 우성(牛聲)으로서의 묘음은 묘음자의 묘음악 천상악으로서의 불교음악 등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다시 예술적 가치의 변화요소의 측면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분류 할 수 있을 것이다.

1)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생각한 새로운 관념
2) 새로운 고안(考案)에 의한 예술적 제작기법
3) 물리적 문화적 환경여건에 따른 기회
4)일반의 반향(反響) 등으로 나눌 수 있는바 여기서 다만 2번 예술적 제작기법이란 요소는 당시의 음악을 오늘날에 들을 수 없어 그를 밝히기란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나 이 외의 사항에 대한 요소는 경전상에 기술되어진 문제만으로도 다소의 회답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의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관념이란 석존성도라고 하는 계기가 문제될 수 있으며 물리적 문화적 환경이란 불교문화의 새로운 전개에서 오는 기회 4)의 불법전교의 반향에서 등으로 각각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불교문화 요소로서의 새로운 가치 관념이 후세 범패 성명(聲明) 등을 중심한 불교음악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의 발전이란 개인적 사회적 내지 종교적 감정에서 시작되며, 예술이란 그 수단이란 관점을 주시하며 후세 불교음악의 형성 발전과정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져야 할 것으로 생각 한다.

경전에 나타난 악기, 음악의 명칭에 대하여

불교 경전 중에는 많은 악기에 대한 명칭과 음악에 대한 명칭이 나타나고 있음에 깊은 관심을 끌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사는 주로 불덕을 찬탄하고 불보살에 공양드리는 찬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어 불교음악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악기명이 범어본, 팔리어본, 서장어본 한역경전 등을 비교연구함으로서 보다 구체적인 악기의 형태와 인도악기 및 음악의 동점과정을 살필 수 있을 것으로 믿으나 이 글에서는 주로 한역경전을 중심으로 가능한 한 범어 팔리어 서장어본의 명칭과 비교하여 그 내용을 검토함이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한다.

경전상의 악기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으나 이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한역경전에 소개하고 있는 음악명(音樂名)만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주목을 끌게 한다. ‘가패(歌唄)’ ‘가(歌)’ ‘기악(伎樂)’ ‘가송(歌頌)’ ‘현가(絃歌)’ ‘염불송(念佛頌)’ 등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불교음악이 아니라 음악 이전의 가상으로서의 음악미를 중심과제로 하여 왔다. 이제 그와 같은 주관적 실재로서의 사상(事象)을 어떻게 상징화하여 객관적 표출로서 음악화 하느냐하는 과제가 제기된다. 즉 석존의 성도에 의하여 새로이 전개되는 음악적 감정을 어떻게 정형화하여 그 감정에 의하여 어떤 사색과 이해를 하게하느냐 하는 것이다.

경전에 의하면 감동의 생명을 음성에 의하여 표현한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보인다.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

1)중국에서는 경을 영(詠)하는 것을 전독, 가찬을 범패라고 한다.
2)천축에서는 법음(法音)을 가영(歌詠)하는 것을 범패라고 한다.
3)서방에 패(唄)있고 동국에 찬(讚)이 있으며 찬(讚)은 문(文)에 따라 결하고 패(唄)는 단계로서 송(頌)을 전한다.

여기서 불덕을 찬탄하고 그에 귀의하고자 하는 감정으로서의 관념이 경문과 단게(短偈)를 가사로 한 성악으로서의 한 형식을 정립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름지기 종교에 있어 음악이 갖는 힘은 대단한 것이다. 왜냐면 그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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