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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치매와 종교현상

기자명 이제열

개신교 개종한 남편이 치매 걸려 한 말

불교 믿다가 개신교로 개종해
독실한 불자 부인과 냉랭해져
치매 걸린 남편 어느날 갑자기
스님 “잘 계셔” 안부인사 물어

포항공대 강병균 교수의 저술을 통해 알게 된 내용으로 인간의 뇌 속에는 갖가지 종교를 체험 할 수 있는 특정세포가 있다고 한다. 이를 갓스폿(Godspots, 신점)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적 지식과 믿음 그리고 열망이 합쳐지면 뇌 속에서 종교적 체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누가 신을 만나 대화를 했다거나, 사후체험을 했다거나, 성령의 빛을 보았다거나, 죄 씻김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거나 하는 등의 모든 현상은 뇌에서 만든 정신 현상으로 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온갖 종교적 현상은 결국 뇌에서 조작하는 것이지 외부의 신이나 절대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만약 사람이 뇌를 다쳐 완전 식물인간이 된 사람에게는 저런 식의 종교적 현상은 일어날 리 만무하다.

젊은 시절부터 불교를 믿다가 중간에 남편이 개신교로 개종한 부부가 있었다. 독실한 개신교인인 사위에 의해 전도가 이뤄진 뒤 불교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개신교를 믿게 된 것이다. 다만 개종 전 남편의 불교에 대한 믿음은 거의 맹신이었지만 교리적 안목이나 정견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 일에 있어 남편의 개종에 매우 실망하고 화가 난 것은 부인이었다. 그 일로 인해 부부 관계는 악화됐고 종교적 갈등으로 냉랭하기 그지없는 사이가 되었다. 각방을 쓰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은 성경책을 펴놓고 기도하는가 하면 부인은 예불문을 펴놓고 절을 했다.

남편의 신앙생활은 거의 광적이어서 틈만 나면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돈만 생기면 교회에 갖다 바쳤다. 남편은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감기가 들고 소화불량이 생기는 것도 예수를 안 믿어 그렇게 된다고 하였다. 하루는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을 보고 “예수 안 믿어 저 고생한다”는 비방까지 했다. 부인은 말도 되지 않는 이런 남편의 행동에 불신만 쌓여갔다. 이후로도 그 부부의 이런 관계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때인가 이런 남편에게 치매가 찾아들었다. 맨 처음에는 망각 증세를 보이더니 사람을 못 알아보기도 하고 엉뚱한 행동과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부인은 남편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미우면서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다. 비록 종교문제로 좋지 않은 사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연민심이 생겨 남편을 성심껏 간호했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어 따로 사는 자녀들과 상의 해 남편을 치매전문병원에 입원시켰다.

어느 날이었다. 시간을 내어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을 때였다. 그런데 남편은 여느 날과 달리 부인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디 다녀오느냐”고 묻기까지 하였다. 이에 아내가 절에 다녀온다고 대답하자 남편은 “스님 잘 계셔? 나도 가야하는데….”라고 말을 했다. 순간 부인의 마음이 울컥했다.

‘골수 예수쟁이’였던 남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부인은 의아했다. 천연스레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에 그동안의 미움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하였다. 종교적 진실이 과연 존재할까하는 의심도 생겼다. 그렇게도 믿었던 성령의 은혜는 어디 간 것일까? 치매에 시달리는 남편의 마음에는 예수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종교를 담당했던 뇌세포가 망가지니 예수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만약 진짜로 예수의 은총이 있었다면 치매에 관계없이 그 믿음이 존속했어야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부처님을 존경하고 불교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불교는 이적이나 신비체험을 중시하지 않는 데 있다. 불교는 스스로에 의해 계발된 지혜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모두가 마음의 조작’이라는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세상에 횡행하는 모든 종교적 체험을 절대시 할 일은 아니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66호 / 2018년 1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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