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법성게’ 제11구 :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23. ‘법성게’ 제11구 :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 해주 스님
  • 승인 2018.11.28 13:41
  • 호수 1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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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겁도 알고 보면 곧 한 생각, 이와 같이 세간을 보라

무량 겁과 순간 다르지 않고
대소와 장단 또한 둘 아니니

일체 존재가 시간·공간적으로
둘이 아니고 오직 하나일 뿐

‘한량 겁이 곧 일념’ 가르침은
화엄법계에서 시간의 의미

꿈에서 수많은 세월 보내도
실은 하루 밤 채 지나지 않아

한평생 삶 지금 이순간이니
성불도 바로 지금 여기 있어

‘법성게’에서 사법(事法)에 즉하여 밝히는 연기가 공간(空間)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그 다음 4구는 시간[世時]을 기준으로 하여 법을 포섭하는 분한을 보인 것이다.

티끌과 시방이 걸림 없고 겁(劫)과 순간(一念)이 다르지 않으니, 크고 작은 것[大小]과 길고 짧은 것[長短] 등이 본래 하나이고 둘이 아니다. 일체 존재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다.

이 경계는 지엄 스님이 입적하기 10일 전에 대중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내용에서도 볼 수 있다.

스님: “경 가운데 ‘하나의 미세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를 머금는다.(一微塵中含十方世界)’와 ‘한량없는 겁이 곧 일념이다.(無量劫卽一念)’라는 등의 말씀을 그대들은 어떻게 보는가?”
대중: “연기법은 자성이 없어서 작은 것은 작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큰 것은 큰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짧은 것은 짧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긴 것은 긴 것에 머무르지 않는 까닭에 그러합니다.”
스님: “그렇기는 그렇지만 아직 설었다.”
대중: “무슨 말씀입니까?”
스님: “많은 말을 하지 말라. 단지 하나를 말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도신장’)

‘대기’에서는 ‘하나의 미세한 티끌’이란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겁 중에 익혀야 할 바를 부지런히 닦은 까닭에 비로소 시방세계를 머금어 받아들일 수 있어서 걸림 없이 자재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티끌이 시방을 머금는 도리를 기준으로 하여 진정 대덕이 이르기를 ‘현상을 융섭하여 이법이 나타내는 문(事融現理門)’이라 한다고 하였다.

현상계 하나에 전체를 다 담고 있는 이 도리는 조주(趙州, 778~897) 스님과 어떤 납승의 문답에서도 볼 수 있다.

師: 그대가 이 조주도량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가?
僧: 7,8년 됩니다.
사: 노승을 보았는가?
승: 보았습니다.
사: 나는 한 마리의 당나귀가 되었는데 그대는 어떻게 보았는가?
승: 법계에 들어가서 보았습니다.
사: 나는 그대가 이 하나를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밥만 헛되이 축내었구나.
승: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사: 어찌 사료[草料]속에서 본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조주록’)

당나귀가 먹는 풀에서 당나귀를 보니, 풀 하나에 당나귀가 명백히 다 드러나 있음을 조주 스님은 가르쳐 주고 있다.

해인사 대비로전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 9세기 조성.<br>
해인사 대비로전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 9세기 조성.

“아금일신중 즉현무진신 변재삼보전 일일무수례(我今一身中 卽現無盡身 徧在三寶前 一一無數禮) 옴 바아라 믹(3) (‘석문의범’)
제가 이제 한 몸 가운데 곧 다함없는 몸을 나투어/ 두루 삼보 전에 일일이 수없이 예배하옵니다.”

이 게송은 기도 정근시 ‘천수경’을 봉독하기 전에 절하며 염불하는, ‘널리 예경하는 진언[普禮眞言]’이다. 우리 불자들이 삼보 전에 예경하는 것이 선재동자가 마야부인 선지식 앞에서 예경한 것과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법계품’에서 마야부인 선지식은 염부제의 미진수 방편문의 몸을 나타내었고, 마야부인이 나타내는 몸의 수효와 같이 선재동자도 또한 그러한 몸을 나타내어 모든 곳 마야부인의 앞에서 공경 예배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야부인은 그 몸의 낱낱 모공에서 여래께서 옛적에 보살행을 닦으실 때 머무르신 일체 세계해 등을 다 나타내고 있다.

마야부인 선지식뿐만 아니라, 경에서는 한없는 보현보살이 그 낱낱 몸에 삼세 일체경계와 일체불찰·일체중생·일체불출현 등 모든 것을 다 나타낸다. 그리고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의 낱낱 털구멍[毛孔] 가운데 무량겁을 지내며 바라밀행 닦음을 설하고 있다.

일체 시·공간의 낱낱 겁, 낱낱 미진 중에 일체 겁과 일체 세계와 일체제불과 일체 중생과 권속들이 있으며, 중생의 낱낱 몸에 모든 부처님세계·일체중생·일체제법·삼세제불·부처님 자재신통 등이 다 나타난다고 거듭거듭 설하고 있다. 한량없는 낱낱 털구멍, 낱낱 티끌에서 삼세 모든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게 되는 것이다.

‘법성게’ 제11구는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다. “한량없는 먼겁이 곧 일념이다”라는 염겁무애(念劫無礙)가 화엄법계의 시간이다.

일념이란 한 생각을 일으키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의미인데, 법융 스님은 한 터럭을 세로로 쪼개어 천개로 나누어 그 한 부분을 옥판 위에 얹어 놓고 날카로운 칼로 끊을 때, 그 날카로운 칼이 옥판에 닿는 때가 일념이라고 설명한다.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br>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무량원겁즉일념”의 경증으로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무량무수겁 해지즉일념 지념역무념 여시견세간(無量無數劫 解之卽一念 知念亦無念 如是見世間) (‘보현행품’)
한량없고 수없는 겁도 알고 보면 곧 한 생각(순간)이다./ 생각도 또한 생각 없는 줄 아나니, 이와 같이 세간을 본다.
과거제세계 광대급미세 수습소장엄 일념실능지(過去諸世界 廣大及微細 修習所莊嚴 一念悉能知) (‘보현행품’)
과거 모든 세계의 광대하고 미세한 것과/ 수행하고 익혀서 장엄한 바를 한 순간에 다 안다.
무량무수겁 능작일념경 비장역비단 해탈인소행(無量無數劫 能作一念頃 非長亦非短 解脫人所行) (‘공덕화취보살 십행품’)
한량없고 수없는 겁도 한순간 경각이 되니/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음이여! 해탈한 사람의 행하는 바이다.
여인수몽중 조작종종사 수경억천세 일야미종진(如人睡夢中 造作種種事 雖經億千歲 一夜未終盡) (‘이세간품’)
마치 사람이 잠잘 때 꿈가운데 갖가지 일을 지어서/ 비록 억천 세를 지내더라도 한 밤도 아직 다 끝나지 않음과 같다.
수어무량무수겁중 상근정진 수보살행 교화중생 미증분별겁수장단(雖於無量無數劫中 常勤精進 修菩薩行 教化眾生 未曾分別劫數長短) (‘普賢行願品’)
비록 한량없고 수없는 겁 가운데/ 항상 부지런히 정진해 보살행을 하여 중생을 교화하되/ 일찍이 겁수의 길고 짧음을 분별하지 않는다.

한량없는 겁이 한 순간인 ‘무량원겁즉일념’은 잠잘 때 꿈에서 온갖 일을 하며 수많은 세월을 보냈더라도 실은 하루 밤이 채 지나지 않은 비유로 설명되고 있다. 한량없고 수없는 겁이 곧 한 순간 찰나이므로, 중생을 교화함에 세월의 길고 짧음에 걸리지 않는다.

설잠 스님은 예와 지금[古今]의 삼세 모든 부처님이 처음 발심함으로부터 보현의 원(願)을 세워 미래제가 다하도록 지금을 여의지 않는다고 한다. 혹은 기침 소리 한 번이나 혹은 손가락 튕기는 것 한 번에서 내지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깜빡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의 방편 아님이 없으니, 이 자리를 여의지 않고 늘 맑다(不離當處常湛然)고 설파하고 있다.

우리가 한평생 살아온 삶도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모습에 다름 아니다. 지금껏 수행해 온 모든 시간 모든 모습이, 눈뜨고 눈감는 이 순간 이 모습에 모두 다 나타나 있다. 지금 여기, 이 몸으로 바로 성불할 수 있는 것이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66호 / 2018년 1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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