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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야소다라 ①

기자명 김규보

“ 싯다르타 왕자는 저를 택할겁니다”

그 누구에게나 진실했던 그녀
사카족 왕자 직접 연회 열어서
신부 택한다는 말에 동참 결심

슬쩍 눈을 뜨자 방 안은 이미 평온한 빛에 잠겨 있다. 어김없이 떠오른 태양이 사방의 모든 것을 깊은 잠에서 깨우고 있었다. 야소다라는 부드럽게 하품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도시는 벌써부터 아침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팔아야 할 물건이 가득 담긴 보따리를 들고 시장으로 향하는 사람, 집 앞에 나뒹구는 잡다한 것을 비질하는 사람, 잠이 깨지 못했는지 눈을 간신히 뜬 채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거리는 아이. 제 일에 골똘한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낯선 새벽 풍경은 낯익은 도시의 광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야소다라는 하루에서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온다는 사실, 거리의 소슬함이 벅적거림으로 뒤바뀐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환한 풍경은 늘 활력을 안겨 주었다. 반대로 어두워 보이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야소다라는 풍경이든, 사람이든 환하게 보길 원했다. 자신 또한 그대로의 모습을 누구에게든 가감 없이 드러내 보였다. 천성이었다.

창밖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던 중, 조심스럽게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녀가 들어와 아침 식사가 준비됐다는 말을 했다. 거리의 활력을 담뿍 거둬들인 야소다라가 경쾌하게 발걸음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야소다라가 스치듯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이내 감탄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힐끔거리기 바빴다. 야소다라의 미모가 동녘에 솟아오른 태양처럼, 들판에 피어오른 꽃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콜리야족 공주인 야소다라는 태어난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외모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왕비의 몸에서 나와 울음을 쏟아내는 핏덩어리를 물로 씻기니 몸 구석구석에서 광채가 나왔다. 말끔한 눈, 코 입이 다소곳하게 자리한 얼굴은 신이 붓질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주름 잡히지 않은 피부 역시 막 태어난 아기라고 믿기 힘들 만큼 하얗고 맑았다. 공주인 데다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태어난 덕분에 부러움 어린 시선과 칭송에 둘러싸여 생활했다. 야소다라는 사람들의 곁눈질과 칭찬을 즐기며, 태생이 고귀하고 외모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인과 시녀가 감탄의 눈빛을 보내는 오늘도, 야소다라에겐 해가 매일 뜨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식당에 당도하자 아버지 숫파붓다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으려는데, 아버지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사카족 숫도다나 왕의 아들 싯다르타 왕자가 혼인할 나이가 되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 왕자의 인품에 대한 소문도 익히 들었을 테지만, 나 역시 그가 건실하다는 걸 듣고 알아 사윗감으로 점찍어 왔던 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숫도다나 왕이 나서지 않고 왕자가 직접 아내가 될 여자를 고르겠다는구나. 아내가 될 후보를 모아 연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왕자가 결정하겠다는 것이지. 네가 간다면 왕자의 마음을 대번에 사로잡을 게 분명한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왕의 말대로 싯다르타 왕자에 대한 이야기는 귀가 아플 만큼 들어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외모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지없이 깊고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는 등, 전설 속 인물의 일대기처럼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 외에도 싯다르타를 찬양하는 이런저런 소문은 그토록 완벽한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온갖 소문을 조합해 보아도 형체가 잡히지 않았던 전설 같은 이를 남편으로 삼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환한 햇살 아래 더욱 확연하고 선명해질 사람들의 부러움 어린 시선과 칭송을 헤아려 보았다. 야소다라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분은 저와 결혼할 자격이 충분하니 분명 저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제가 연회에 가야겠지요. 연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드리겠으나, 저만의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니 그렇게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7호 / 2018년 1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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