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그물 끊고 무소득의 근본지 증득하라
의심의 그물 끊고 무소득의 근본지 증득하라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8.12.05 10:27
  • 호수 14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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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㉗

일체법이 모두 공적함이 도리
만법이 ‘공’하다는 진상 알아야
공은 영원불변한 까닭에 ‘진공’
이생에 용맹정진해 성불하기를
정공 스님은 육도윤회의 경계상이 번뇌로 이루어지므로 번뇌를 끊으면 윤회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정공 스님은 육도윤회의 경계상이 번뇌로 이루어지므로 번뇌를 끊으면 윤회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극락세계 보살은 일체 법이 모두 다 공적한 줄 알아서 생사번뇌의 두 가지 남은 습기가 한꺼번에 다한다(知一切法 悉皆空寂 生身煩惱 二餘俱盡).”

‘일체법이 모두 다 공적한 줄 안다’와 ‘사대(四大)가 모두 공하고 오온(五蘊)은 무아(無我)이다’, 이 두 문구의 뜻은 완전히 같습니다. ‘사대’는 물질의 네 가지 성질로 곧 지·수·화·풍을 말합니다. ‘지(地)’는 가장 작은 물질을 표시합니다. 불법에서는 이를 ‘미진(微塵)’이라 하고, 과학자들은 원자·전자·미립자라고 합니다. ‘지’는 확실히 물질이 존재하고 있음을 표시합니다. 이는 과학 장비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수(水)’는 습도를 표시하고, ‘화(火)’는 온도를 표시합니다. 현대과학에서는 음전하와 양전하라고 하는데, 양전하는 ‘화’이고, 음전하는 ‘수’입니다. ‘풍(風)’은 움직이는 모습을 표시합니다.

‘사대’는 바로 물질에 기본적인 네 가지 현상으로 일체 삼라만상이 모두 기본물질의 조합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금강경’에 이르시길, ‘일합상(一合相, 물질의 기초인 1백억 개 중성미자)은 즉 일합상이 아니라 이름이 일합상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기본물질이 조합하여 크게는 행성과 은하계에서 작게는 미세먼지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을 이룹니다.

기본물질은 심법(心法)이 변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유식경론’에 이르시길, ‘일념에 무명으로 깨닫지 못해 세 가지 미세한 상이 생기고, 이 경계를 반연하여 여섯 거친 상이 생겨난다’ 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세 가지 미세한 상의 ‘견분(見分)’과 ‘상분(相分)’, ‘능견상(能見相)’과 ‘경계상(境界相)’입니다. 기본물질은 경계상, 즉 상분입니다. 상분은 견분에서 변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 가운데 유가 생기고, 유는 공으로 돌아갑니다. 일체법이 모두 다 공적한 도리를 명백히 이해하여야 ‘만법이 모두 공하다’는 진상(真相)을 알 수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 듣는 것, 접촉하는 것은 이(理) 상에서 말하면 공이고, 사(事) 상에서 말하면 유입니다. ‘유’는 ‘가유(假有)’로 진실이 아니고 ‘공’이 진실입니다. 진실은 영원불변한 것으로 변하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은 영원불변한 까닭에 ‘진공(真空)’이라 합니다. ‘유’에 관해서 일체현상은 모두 변화합니다. 사람은 생노병사의 매우 현저한 변화를 겪습니다. 실제로 미세한 변화는 우리들 신체세포의 신진대사처럼 매순간 멈추지 않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식물에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광물과 행성에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체 만물의 모습은 모두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하고 있는 이상 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는 ‘가유’·‘환유’·‘묘유’·진공묘유(真空妙有)로 불립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과 ‘유’는 하나의 일입니다. ‘진공’은 ‘묘유(妙有)’의 가운데 있고, ‘묘유’는 ‘진공’의 가운데 있습니다. ‘진공’은 체(體)이고, ‘묘유’는 상(相)입니다. 이래야 우리가 일체 경계를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또렷이 볼 수 있으면 이는 우리를 도와 ‘일체 집착을 여의게 합니다.’ 집착은 사실진상을 또렷이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생깁니다. 몸 바깥의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집착해서 뭐가 좋겠습니까? 기꺼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진공은 ‘진여본성’이라고 말합니다. 진여본성은 자취가 없습니다. 그것은 색이 없어 볼 수 없고, 음성이 없어 들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사유나 상상으로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이는 우주 일체만법의 본체로 일체 법은 본체로부터 변하여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음을 밝혀 불성을 본 후 바로 불생불멸입니다. 경계상이 매우 자유로우면 어떤 상이 나타나도 기쁩니다. 우리는 현재 미혹 전도되어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 헛수고입니다. 불성을 본 후에 스스로 변할 수 있습니다. 허공법계에서 자신이 주재자가 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대자재를 얻습니다. 그래서 꼭 사실진상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여(餘)’는 습기로 가장 끊기 어렵습니다. ‘생신(生身)’은 바로 생사입니다. 우리는 육도에서 몸을 버리고 몸을 받아 생사에 윤회합니다. 생사윤회는 상입니다. 경계상이 있는 이유는 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도윤회의 경계상이 번뇌로 이루어지므로 번뇌를 끊으면 윤회는 없습니다. 아라한처럼 견사번뇌를 끊으면 육도의 생사윤회를 뛰어넘습니다.

“삼계에서 구경일승법을 평등하게 부지런히 닦아 피안에 이른다(于三界中 平等勤修 究竟一乘 至于彼岸).’

이는 정종수행의 특색을 말합니다. 삼계는 지극히 불평등하고 차별이 대단히 큽니다. 보살은 여기에서 평등하게 수학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고, 일체중생에게 평등하게 수행하도록 가르치고 인도합니다. ‘구경일승(究竟一乘)’은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는 법으로 이는 구경일승법입니다. ‘피안(彼岸)’은 성불로 이 법문을 수행하면 이번 일생 동안 결정코 원만히 성불합니다.

“의심의 그물을 결단코 끊고, 무소득의 근본지를 증득하며, 방편지로써 후득지를 증장시킨다(決斷疑網 證無所得 以方便智 增長了知).”

앞의 두 문구는 구경원만한 반야지혜를 성취함을 말합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한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이 다섯 글자는 세존께서 22년 동안 설하신 6백권 ‘대반야경’의 법요입니다. 원만한 반야지혜를 증득하면 이것에 대해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방편지(方便智)’는 용(用)입니다. 앞의 ‘무소득’은 근본지이고, 진실한 지혜입니다. 방편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근본지·실지(實智)는 자신이 수용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교화하면서 요지(了知)가 증장됩니다. ‘요지’는 후득지(後得智)로 바로 무소부지(無所不知)입니다.

“근본을 좇은 이래로 신통에 안온히 머물러서 일승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지, 다른 곳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從本以來 安住神通 得一乘道 不由他悟).”

극락보살이 ‘근본을 좇은 이래로 신통에 머무는’ 이 같은 능력은 모두 아미타부처님 본원 위신력의 가지입니다. 본원은 48원입니다. 48원 각각의 원은 모두 다른 47원을 포함해 원마다 원융합니다. 그래서 이 힘은 불가사의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불력에 의지해 보리도상에서 매우 짧은 시간에 원만히 성취하게 됩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67호 / 2018년 1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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