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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반 고흐의 ‘가셰의 정원’과 위지을승의 굴철반사

기자명 주수완

형식과 전통을 벗어버리고 자유와 열정으로 가득한 모험적인 걸작

반 고흐 작품에 대한 열광은
비극적 인생 투영됐기 때문

살았을 때는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최고가치 인정받아

필법이 뒤틀리고 이글거려
정신착란 속 그림으로 이해

그가 남긴 편지 등 살펴보면
그림에 대한 열망만이 가득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그림
형식 벗은 열정적인 예술혼

당나라 시기 위지을승 화가
반 고흐 작품과 비슷한 화풍

천년도 넘은 세월 간격에도
모험적 예술가 열정은 비슷

‘올리브 나무’. 오르세 미술관. 1889년.

이탈리아 여정의 흥분을 뒤로 하고 밀라노 중앙역에서 23시5분에 프랑스 파리 리옹역으로 출발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리옹역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 조금 전이었고, 바로 전철로 파리 북역으로 이동해 역 근처에 미리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파리에는 몇번 왔지만, 사실 그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맨 처음에는 조사 일정을 마치고 시간을 내려했지만 마침 월요일이어서 미술관이 문을 닫았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세잔과 반 고흐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파리 일정 첫 날은 관람객이 많지 않은 기메미술관을 방문해서 조사를 했고, 오르세는 둘째날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섰다. 이른 아침이라 다행히 앞쪽에 줄을 섰지만, 역시 조금만 늦었더라도 더 줄이 길어질 뻔 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반 고흐에 열광할까? 물론 그의 그림이 아름답기 때문이겠지만, 세상에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가 반 고흐만 있는 것은 아닐텐데, 다소 반 고흐에게 ‘편중된’ 미적 감성은 일종의 숭배에 가깝다고 할 정도인 듯하다. 반 고흐에 대한 칭송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이 맛있어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것만 먹겠다고 하면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음식이 너무 완벽해서 그것만 먹어도 영양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다른 맛있는 것도 많은데 전혀 시도해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만 먹겠다고 하면 여러 음식 맛을 즐기는 사람에겐 그 사람이 얼마나 안타까워 보일 것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반 고흐의 작품을 볼 때 그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그의 그림은 팔리지도 않고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세계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그림의 작가라는 점, 그가 정신병을 앓았다는 점, 그리고 끝내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했다는 점 등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서 불안함, 떨림, 열정, 고독 등 우수에 잠긴 한 순수한 영혼의 흔적을 읽고, 그것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잠겨있던 치유와 극복의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 뉴욕현대미술관(MoMA), 1889년.

사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니만큼 작가의 삶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는 불교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작가 개인에 대한 연구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그 위대한 걸작인 금동반가사유상이나 석굴암을 만든 작가가 누군지는 아예 알지도 못하며, 조선시대 불화의 거장 의겸 스님에 대해서도 개인사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이름 모를, 혹은 이름이 알려져 있더라도 개인사를 전혀 알 수 없는 작가를 통해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작품 자체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버릇으로 작가가 잘 알려진 경우에도 작가에 대한 탐색은 자제하고 순수하게 시각적 특징을 먼저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실상 미술사는 바자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에서처럼 작가분석에서 시작했지만, 근대적 미술사로 넘어오면서 ‘인명없는 미술사’로 불리는 하인리히 뵐플린의 접근처럼 순수한 시각형태의 분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필자의 접근 역시 후자에 더 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작가분석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론이든 앞서의 방법론 위에 그 다음의 방법론이 서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 고흐 말년의 작품을 그의 불행의 소산으로 보려는 시각은 조금 뒤로 미룰 필요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 개봉하여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러빙 빈센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 영화에서는 반 고흐의 삶의 끝자락을 추적하고 있는데 거의 하루에 한 작품을 남길 정도로 열심히 그렸다던 반 고흐의 작품들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대표작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1890년과 그 전해인 1889년에 주로 그려졌기 때문에 이 시기를 집중 조명한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반 고흐가 자살한 것도 아니며,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거나, 착란증상에서 ‘별이 빛나는 밤’의 흔들거리는 밤풍경을 그렸을 것이라는 설명까지 나온 마당에 ‘러빙 빈센트’ 속의 반 고흐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동생 테오를 비롯한 주변 사람에게 썼던 그의 편지 속에서도 그는 그림에 대한 가득한 열망을 토로하고 있을 뿐,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순수한 예술적 표현을 지나치게 정신병적, 우울, 고독의 키워드로만 읽어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의사 가쉐의 정원’ 1890년, 오르세 미술관.

1889년부터 1890년에 그려진 이 그림들을 보면 특히나 필법이 구불구불한 것이 특징이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예로 들자면 ‘올리브나무’나 ‘의사 가쉐의 정원’이 이 시기의 작품이며, 하늘과 나무, 혹은 땅과 나무가 유사한 패턴으로 구불거리고 있다. 원래 터치가 거친 것이 인상파의 특징이고, 색을 섞어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원색이 캔버스에서 서로 섞이도록 하는 것 또한 조르쥬 쇠라의 점묘법 이래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최소한 그 이전의 반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 하나하나의 붓 터치는 짧고 직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유독 1889년에 이르러 이처럼 그의 필선은 더욱 거칠고 구불구불해 보인다. 마치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이것이 어쩌면 그가 더 감정적으로 격해 있었다는 증거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말년의 그의 작품들은 더더욱 꿈틀거리고 뒤틀려 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특히나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다. 반 고흐의 작품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밤’은 그러한 필법의 정점을 보여준다. 나무와 산과 별, 하늘은 별개의 것이지만 이 구불구불한 필선으로 마치 서로 호응하는 듯 일체가 되었다. 이 구불거림이 마치 바람에 의해 흔들거리듯 보이기도 하여 우리의 국민시인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러한 반 고흐의 화풍을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상처받은 짐승의 몸짓 정도로 생각하고 ‘지못미’의 심정으로 바라보며 함께 눈물을 흘린다 해도 나쁠 것은 없겠지만, 틀림없이 반 고흐가 바랐던 바는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그림은 매우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정신병적 불안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불안의 개념’에서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불안은 정신병의 징후가 아니라 사실상 인간의, 특히나 자유와 모험을 찾아 떠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반 고흐의 불안은 그런 예술가로서의 불안이었지, 착란적인 불안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뜨거운 열정, 아무도 표현해보지 않았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 이 자유로운 영혼의 불안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리라.

이러한 그의 화풍에 일본의 우끼요에라는 풍속판화가 일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것은 반 고흐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 당시 유럽에 널리 퍼졌던 쉬누아즈리(중국 취향)에 이은 자포니즘(일본 취향)의 반영이었다. 필자는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 당나라 당태종 시기에 이름을 날렸다던 한 화가에게 주목하고 싶다. 그는 위지을승이라는 화가인데, 그의 붓질은 “굴철반사”라는 별명으로 특히 유명했다고 한다. ‘굴철’이란 철사를 구부려 놓은 것 같다는 뜻이고, ‘반사’는 실이 구불구불한 것을 묘사한 것이다. 실이 구불구불한 것은 부드럽게 물결치듯 하겠지만, 철사를 구부려놓은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했으니 다소 뻣뻣하게 구불구불하다는 뜻이다. 이 필선이 뭐라고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을까 싶은데, 막상 그의 작품을 충실하게 모사한 북송시대의 그림을 보면 그 굴철반사가 실은 반 고흐 말년의 구불구불한 필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나무 둥치를 표현한 굵고 격동하는 필법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영락없는 인상파 그림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7세기에 인상파 화풍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지을승 작품에 대한 북송대 진용지(陳用志)의 모작 ‘석가출산도(釋迦出山圖)’. 미국 보스톤 미술관 소장.

이 위지을승이란 화가는 실은 실크로드에 있는 호탄이란 나라 출신의 화가였는데, 어쩌면 점잖게 절제하며 그리던 중국의 화가들과 다르게 이방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당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위지을승의 굴철반사는 결코 정신병적 착란이나 인정받지 못한 고독한 화가의 필선이 아니었다. 어떤 형식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알았던 모험적 예술가의 열정의 표현이었을 따름이다. 반 고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렇게 동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반 고흐의 편지를 읽어보면 그는 자연을 탐구한 과학자 같았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처럼 분석하고 해부했다. 다만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인체를 해부했다면, 반 고흐는 내면의 시각을 해부하고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보는 지 더 적나라하게 파헤쳤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필자는 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 앞에서 그의 작품 자체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반 고흐를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더불어 그 역시 거장으로 불려야 마땅하리라.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67호 / 2018년 1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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