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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문삼석의 ‘나무들의 그림자’

기자명 신현득

겨울엔 언 땅이 햇살 더 받게 하고
여름에는 그늘 짓는 나무의 보살행

산소 만들어 숨을 쉬게 하고
먹거리 내어주며 영양 공급도
몸 잘라 기둥·대마루 되어주고
연필·종이로 희생하는 대보살

나무를 보살이라 할 수 있을까?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을 크게 행하는 수행자를 말하고 그의 행적을 보살행이라 한다. 남의 고통을 대신하는 일, 남의 힘이 돼주는 일, 남을 이롭게 하는 일, 남을 위해서 베푸는 일, 남을 위해 내 몸을 희생하는 일이 모두 보살행이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사람의 소리를 1천 눈과 1천 손으로 보살피는 자비심의 보살이시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모두 구제한 후에 부처가 될 것을 서원한 보살이시다.

나무가 보살이라면 어떤 보살행을 하는 것일까? 그 첫째는, 나무를 포함한 모든 식물이 산소를 만들어서 사람과 새·짐승을 숨 쉬게 한다. 산소 없이는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이 1분도 이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나무를 포함한 모든 식물은 중생을 숨 쉬게 하는 보살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놀라운 보살행을 하고 있으니 보살 중에서도 큰 보살이다.

다음으로, 나무를 포함한 식물은 사람이나 새·짐승에게 영양을 대어준다. 식물이 사람과 동물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식물을 먹이로 하지 않은 동물들도 식물을 먹고 자란 것을 먹이로 하는 것이므로 식물을 먹는 것이 된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중생은 없다. 중생 모두에게 먹거리를 대어주는 나무를 포함한 식물은 보살이다. 모든 중생을 먹여 살리는 것이니, 이들을 큰보살(大菩薩)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이들 큰보살이 하는 일이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일, 먹여서 살리는 일 뿐일까?

나무는 자기 몸을 자르고 쪼개어 기둥이 되어주고 대마루가 되어 집을 짓게 한다. 나무의 희생이다. 마룻바닥이 돼 주고, 가구가 돼 준다. 나무의 희생이다. 연필 자루가 돼준다. 나무의 희생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종이, 책을 만드는 종이의 원료는 나무다. 나무가 몸을 내주어 얇은 종이가 되게 한 것이다. 나무의 희생으로 종이가 된 것이다.

남을 위해 내 몸을 바치는 희생! 이렇게 희생을 하는 나무는 분명히 큰 보살이다. 그것뿐일까? 다음 동시 한 편을 살펴보자.

나무들의 그림자 / 문삼석

발밑 언 땅이
햇살 한 올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겨울나무는
제 그림자를 작게 줄이지.
짧고 가늘게
줄이고 또 줄이지.

그렇지만 여름이 되면
발 밑 벌레들이 뜨거운 햇살에 데기라도 할까봐
제 그림자를
크게 부풀리지.
지저귀는 새들 노래까지 다 안을 만큼
넉넉히 품을 벌려
넓고 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지.

문삼석 동시집 ‘우리들의 모자와 신발’(2016)

겨울이면 나무 큰보살이 가랑잎 옷을 벗고 겨울잠에 든다. 잠을 자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다. 몸을 짧고 가늘고 앙상하게 줄여서, 겨울 언 땅이 한 올의 햇살이라도 더 받게 하려는 거다. 그것이 보살행이다.

“꽁꽁 언 땅에 적은 온기라도 줘야겠어” 하는 보살의 마음이다. 아주 적은 거지만 있는 방법을 다해서 땅에 온기를 주려는 갸륵한 생각이다. 그러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되면 보살의 염려는 이와 반대다. “더위에 땅이 더워졌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 벌레들도 햇볕에는 견딜 수가 없지.” 이런 생각에서 품을 크게 벌려 그늘이 넉넉하게 한다. 나무가 그늘을 짓는 일도 나무의 보살행이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67호 / 2018년 1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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