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 불교계 활약상 재조명
1987년 6월 민주항쟁, 불교계 활약상 재조명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8.12.07 19:13
  • 호수 14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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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사업회, ‘6월항쟁과 불교’
6월 항쟁 스님‧재가불자 활약상
역사적 기록‧증언 등으로 정리
불교계의 민주화운동사 재정립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서울 개운사에서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면 집회를 열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제공.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서울 개운사에서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면 집회를 열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제공.

“국민 여러분, 지금 이 시각 진행되고 있는 군사독재 승계 절차는 무효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전 국민의 이름으로 반민주적, 반역사적, 반민중적 폭거를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1987년 6월10일 정오, 서울 덕수궁 옆 성공회 대성당 종탑에 오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지선 스님의 목소리가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뒤이어 군부독재 종식을 염원하는 성당 종소리가 서울 시내에 메아리쳤다. 때를 같이해 서울 개운사에서 ‘민주헌법쟁취 불교도 결의법회’를 가진 스님과 재가불자들은 염천교, 신세계백화점 앞, 퇴계로, 명동으로 진입했다. 잿빛 승복을 입은 스님들은 희뿌연 최루가스가 가득한 시위대 중심에서 “호헌철폐와 민주주의 성취”를 외쳤다. 한국 현대사의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간한 '6월항쟁과 불교' 표지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간한 '6월항쟁과 불교' 표지사진.

최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 스님, 이하 민주화기념사업회)가 6월 민주항쟁 당시 불교계의 대응과 활약상, 1980년대 불교자주화‧사회민주화 운동과정을 정리한 책 ‘6월 항쟁과 불교(윤금선 지음)’를 발간했다. 이 책은 민주화기념사업회가 펴낸 ‘6월항쟁과 국본’의 후속편으로 6월 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불자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정리한 기록물이다.

6월 민주항쟁에서 불교계의 역할은 지대했다. 1980년대 초부터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에 앞장섰던 진보계열의 스님들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한 청년불자들은 6월 민주항쟁을 이끈 주역들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6월 항쟁에서 불교계 역할은 다른 종교계에 비해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6월 항쟁과 불교’는 1980년대 불교계 민주화 운동사를 재정립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6월 항쟁과 불교’는 불교계의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 운동과정을 정리한 기록이다. 불교계의 민주화운동 참여는 가톨릭과 개신교계 등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됐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계가 유신독재 반대투쟁을 벌이던 1970년대 불교계는 아직까지 사회민주화에 나설 동력들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호국불교론을 내세우며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데 급급했고, 이는 불교계가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1970년 후반부터 젊은 스님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민중불교운동’은 불교계를 사회참여로 이끄는 기폭제가 됐다.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사회운동’을 표방한 민중불교운동은 불교자주화에 초점을 맞췄다.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불교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권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민중불교운동을 토대로 성장한 젊은 스님들은 불교자주화와 함께 사회민주화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특히 1980년 5‧18광주학살과 10.27법난 등 국가권력이 자행한 만행은 젊은 스님과 재가불자들에게 ‘불교자주화 운동과 사회민주화 운동이 둘이 아님’을 자각하게 됐다.

젊은 스님들은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를 위한 결사체를 속속 결성했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민중불교운동연합 등 재가단체들도 민주화 운동 대열에 본격 뛰어들었다. 스님과 재가단체들은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를 통해 불교자주화를 선언했고, 1987년 박종철 영가 추모투쟁, 광주 원각사 5.18 추모법회 침탈 규탄 법회 등 자체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그런가 하면 1987년 5월 재야인사와 종교인,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에는 지선, 진관 스님 등 출가자 102명과 재가불자 58명이 가입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키웠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개운사 승가대 학인스님들이 시위대 선봉에 서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개운사 승가대 학인스님들이 시위대 선봉에 서서 "호헌철폐와 민주주의 성취"를 외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제공.

‘6월 항쟁과 불교’에는 이토록 지난했던 불교계의 사회민주화 참여 과정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또한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스님과 재가불자들의 인터뷰 등을 담아 당시 긴박했던 장면들을 현장감 있게 조명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정토구현전국승가회, 한국불교대학생연합회 등 출재가 단체들이 발표한 성명과 시국선언문 등이 부록으로 수록돼 있어 불교민주화운동사를 연구하는 사료적 가치도 크다는 평가다.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누구의 공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민주화 역사는 결국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어 “1980년대 치열하고도 지난했던 불교계의 이념모색과 투쟁과정을 제반기록에 입각해 최대한 담아냈지만 여전히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향후 보다 다양한 문헌자료, 다각적인 평가 등으로 보완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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