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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민과 기독교 선교사의 죽음

기자명 이병두

유럽인들은 1492년 이래 신세계라고 불렀던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며 이 대륙을 수렁에 빠트린 천연두‧홍역‧인플루엔자‧페스트‧황열‧콜레라‧ 말라리아 등 그곳 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생물학 무기를 갖고 들어갔다. 유럽의 침략 이전 이 대륙에는 이런 질병이 없었다. 따라서 면역력이 아예 없어서 이 질병들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고, 아스테카와 잉카 제국 원주민의 절반 이상이 이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1600년까지 약 100년 사이에 20회 정도 대륙을 휩쓴 전염병으로 원주민 인구가 침략 이전의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참변을 맞아 원주민들은 ‘하늘[神]이 백인 편’이라고 여겼다. 백인 침략자들도 이 상황을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해석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지쳐 있을 때, 하느님은 원주민에게 천연두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셨다.”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데 아길라르(1479~1571년)의 말이다.

십진법을 알고 있었고 천문학‧의학 분야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간직해오던 아스테카‧마야‧잉카 제국은 이렇게 무너졌고, 그 자리를 차지한 유럽인들은 제멋대로 땅을 나누어가졌다. “신세계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나누어 준다”는 1493년 당시 교황의 교시가 그 근거였다. 그리고 평화로웠던 이 땅이 그 뒤로 ‘선(善)’을 찾아볼 수 없는 땅으로 바뀌어 갔다. 침략자의 기록에서도 “그때 이곳에는 도둑‧악당‧게으름뱅이가 없었다. 그토록 슬기롭고 죄악을 멀리했던 원주민을 우리가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때는 악이 없었으나 지금은 선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실토하고 있을 정도이다.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와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침략자들이 종교(기독교)와 기독교 성서를 어떻게 악용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다. 침략군의 가톨릭 군종 수사가 ‘교황이 이 땅의 소유권을 허락하였다’는 뜻의 선전포고문을 읽자 아타왈파가 말한다. “네가 말하는 그 교황이란 자가 참으로 미쳤구나. 남의 나라를 떡 주무르듯이 나눠주다니. …” 그 뒤 수사가 “하느님 이외의 신을 섬기는 것은 모두 어리석다”며 그 근거로 성서를 내밀자 “[이 책이] 나한테는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하면서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본 수사의 입에서 “성서를 모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하는 말이 ‘공격 명령 신호’가 되어 스페인 인들이 대포를 쏘아대고 기마병들이 비무장 상태의 잉카인들을 마구 죽였고, 이렇게 해서 제국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백인들이 선교사를 침략의 선봉으로 앞세워 원주민과의 충돌을 유발하게 하고 혹 원주민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죽게 되면 침략과 정복의 근거로 삼았던 것은 아메리카 대륙뿐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도 그랬고, 필리핀에서도 그랬다.

지난 11월15일 미국인 선교사 존 엘런 차우가 인도양의 안다만 제도 북 센티널 섬에 접근했다가 부족민이 쏜 돌화살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일어난 뒤 한 달이 가까워오지만 인도 당국은 섬에 접근해 시신 수습을 할 엄두를 내지 않고 있다. 부족민들의 공격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수만 년간 외부와의 교류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해온 부족민들은 외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 육지 사람들이 질병을 옮기면 부족이 전멸할 가능성 때문이다.

차우가 죽기 며칠 전에 남긴 일기에 “신이시여, 이 섬은 당신의 이름을 들을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는 사탄의 마지막 요새입니까?”라고 쓰는 등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석기시대인’이라고 하는 이 부족에 기독교 선교를 시도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옛날 같으면 차우의 죽음에 이어 미국의 공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외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약한 원주민들의 상황을 배려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아마 이것이 백인들이 수백 년 동안 저지른 죄악의 대가로 인류가 얻어낸 ‘너무 값비싼 교훈’일지도 모른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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