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인 숙이 보살님은 쾌활하고 정이 많습니다. 매년 어린이 여름불교학교 때는 감자와 옥수수를 챙겨주고, 때에 맞춰 소박한 살림살이를 보내줍니다. 농사짓는 시골에서 대가족의 삶이 어떤지 잘 알지만, 보살님은 한 번도 힘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입원 소식을 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장하는 동안 수십 번 생사를 넘나들었으니, 병과 함께 자랐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단계까지 와 있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고아원 봉사를 하고,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했으니, 한순간도 자신의 삶을 허비한 적이 없습니다. 아들은 스님을 꼭 기억하고 싶다며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놀랍도록 쾌활하고 배려 깊었습니다. 용기 있는 아들은 어머니를 꼭 닮았습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숙이 보살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심장 이식 수술이 빨리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 기도가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것 같아서 더 고통스럽다며 결국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명의 인연은 수많은 선연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니, 차라리 모든 생명이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하기를 발원하는 기도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선연들이 모여 마침내 수명을 잇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죄책감보다 더 큰 기쁨으로 생명을 받으시라고 말했습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어려운 일을 능히 할 수 있으면, 부처님처럼 존중 받는다(難行能行 尊重如佛)”란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되려는 불자들에게 기도와 공부, 수행, 포교, 봉사는 평상의 일입니다. 평상의 일을 기꺼이 잘할 수 있다면 불자로서 가장 큰 자랑이요, 기쁨일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시절에 조용한 곳에서 기도와 수행을 고요히 잘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분 좋을 때 친절하고 좋은 말 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아이들도 잘합니다.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잘하는 것은 축생들도 하는 일입니다.
진정 잘하는 것은 하기 어려운 일을 즐겨 하는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때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시끄러운 시장 속에서도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어야 하고, 원수에게도 평등한 자비심을 베풀 수 있어야 참으로 잘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 말 한마디 때문에 도량 안에서 다투고 공부나 봉사, 수행을 그만두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원망을 품고 나쁜 말을 쏟아내 갈등하고, 대중공양물을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누는 일도 숱합니다.
경전 한 구절 알지 못하지만, 생명의 여린 촛불 앞에서 밝게 웃으며 오히려 상대를 위로하는 이제 갓 서른의 아들 앞에서, 자식의 생명과 더불어 다른 이의 생명을 걱정하는 보살님의 눈물 앞에서,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참회의 시간이었습니다.
존중받는 부처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진정 어려운 일을 해내는 그 마음이 부처님입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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