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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법화경’만 최고 경전인가

기자명 이제열

“이제부터는 금강경 공부 안합니다”

법화경 제일이란 스님의 말에
금강경 강의하다가 중도 포기
특정 경전 최고란 생각은 오만

한때 시골 암자에서 ‘금강경’을 강의한 적이 있다. 불교 공부할 기회가 적은 시골 불자님들이었지만 열성으로 법문을 경청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나 흘렀을까? 여느 때처럼 법회를 위해 암자를 찾았는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주지스님과 불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어색했다. 왜들 이러나 싶었는데 마침 주지스님이 다가왔다. 하시는 말씀인즉 “이제부터는 ‘금강경’ 공부를 안 하고 ‘법화경’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법사님은 이젠 그만 오셔도 된다”고 했다.

스님의 말에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스님에게 아직 ‘금강경’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갑자기 ‘법화경’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법화경’ 외에 다른 경은 모두 방편교라고 했다. 그러더니 ‘법화경’만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그대로 설한 실상교(實相敎)이므로 이제부터 공덕이 제일 뛰어난 ‘법화경’을 공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방편교란 부처님의 깨달음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설한 가르침이고 실상교란 부처님의 깨달음 그 자체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서울역이 실상교라면 대전역이나 천안역은 방편교에 해당한다. 또한 줄기나 잎이 방편교라면 열매는 실상교이다. ‘법화경’에서는 ‘법화경’을 실교(實敎)라 하고 다른 경전들을 권교(權敎)라 하여 ‘법화경’을 최고의 경전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스님은 신도들에게 갑자기 ‘법화경’을 권한 이유를 하나 더 들었다. 그것은 ‘금강경’은 일체가 공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중생들에게 이익을 보여주지 못하며 ‘범소유상 개시허망’에 나와 있듯이 허망에 떨어져 공덕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스님의 이 같은 말을 듣고 기가 찼다. 대체 스님의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 놓은 계기는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법화경’에 심취해 있는 한 비구스님의 설법을 듣고 ‘금강경’에 대한 신심이 끊어지고 대신 ‘법화경’ 신봉자로 돌아서게 되었다고 했다.

오래도록 불전을 강의하고 설법하는 일을 하다보면 온갖 종류의 불자들을 만나게 된다. 기도를 수행으로 삼는 불자, 화두참선을 수행으로 삼는 불자, 경전 수지독송을 수행으로 삼는 불자, 다라니독송을 수행으로 삼는 불자 등 별별 불자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신심이 지나쳐 편협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고집스러운 불자들이 있다. 바로 ‘법화경’을 신봉하는 불자들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앞의 스님처럼 부처님 말씀들 중에도 ‘법화경’만이 최고의 경전이고 다른 경전들은 모두 그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법화경’만이 최고이고 다른 경전들은 하위에 놓여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법화경’이 실상의 이치를 설하는 실교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다른 경전들은 다른 경전들대로 자신을 최고의 경전이라고 추켜세운다. ‘법화경’에서는 ‘법화경’을 최고의 경전이라고 말하듯 ‘화엄경’에서는 일승원교(一乘圓敎)라 하여 ‘화엄경’을 최고 경전이라 말한다. 또 ‘원각경’에서는 십이부경의 안목(眼目)이라 하여 ‘원각경’을 최고 경전이라 말하며, ‘반야경’에서는 최상승자(最上乘者)를 위한 설법이라 하여 ‘반야경’을 최고 경전이라고 말한다. 그밖에 다른 경전들도 온갖 수식어를 붙여 최고의 경전임을 밝힌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 말씀은 결국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최상의 진리를 설한다고 보아야한다. ‘법화경’이 아무리 높은 경이라 해도 공의 이치를 설한 ‘반야경’이 없다면 ‘법화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법화경’이 최고라 여기고 수행하는 것은 좋으나 다른 경전을 업신여기고 낮게 평가했다가는 ‘법화경’ 수행 공덕 자체를 무너뜨리게 된다. 부처님 말씀은 처음과 끝이 한결 같고 이치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다른 경전을 떠난 독립적 경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전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신심이 아니라 오만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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