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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고도 또 급한 일

2018년 무술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 해에도 우리 불교계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총무원장을 탄핵하고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격변기를 보내야 했다. 여기에 맞물려 한 지상파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조계종 고위직 스님들의 비위와 관계된 내용을 두 차례나 내보냄으로써 큰 파장이 일었다. 올 한 해 조계종 승단에서 불거졌던 각종 혼란상은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일임이 분명했다.

조계종 승단의 안정과 화합, 그리고 신뢰회복은 한국불교 전체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때로는 재가자들의 역할 증대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또 때로는 종단 소임자들을 향해 ‘권승’이라는 무차별적 비난을 퍼붓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한국불교는 ‘견지동45번지’가 제 역할을 해주어야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중책을 맡고 계신 스님들은 산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그것도 승려의 본분사와 전혀 관계없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계신 분들을 향한 도덕적 잣대는 실로 엄격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한국불교와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너무나도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제36대 조계종 총무원 집행부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11월9일에는 원 구성을 마친 제17대 중앙종회도 개원하였다.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난 몇 달간 조계종은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우리 불자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불안감과 조바심도 다소 진정되어가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불과 몇 달 전의 상황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최근의 분위기는 다행스러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조계종은 승단의 안정에만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누차 강조했듯이 현 조계종 집행부의 눈앞에는 종단 화합과 혁신이라는 두 가지의 과제가 함께 놓여있기 때문이다.

정진은 불퇴전(不退轉)이라 했다. 뒤로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진행이다. 참으로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는 수행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종단 안정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든다면 종단 혁신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는 또 다시 훗날의 과제로 물러나게 된다. 비록 새롭게 출범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집행부이지만, 혹시 종단안정이라는 표현 속에 제자리걸음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은 아닌지, 집행부 스님들은 보다 형형한 눈빛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무렵이면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 문구가 귓전을 때리곤 한다. 스님은 훌쩍 지나가 버리는 하루, 한 달, 한 해의 빠름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는 우리네 삶이 ‘잠도사문(暫到死門)’, 그야말로 ‘앗!’ 하는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마는 것이라는 점을 설파하였다. 물론 원효 스님이 이 글을 통해 내리고 싶었던 결론은 ‘수행’이었다. 스님은 우리들에게 덧없는 삶의 실상을 깨우쳐주고자 하였으며,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삶의 의미를 부디 수행에서 찾으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그래서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의 마지막 문구를 ‘막속급호(莫速急乎)’의 반복으로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도대체 당신들에게 주어진 삶이 몇 번이나 된다고 이리도 게을리 살고 있는가? 이 어찌 급하고 급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내 개인의 삶에서부터, 가정, 직장, 우리 불교계,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지구촌 전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념이 떠오르는 시간들이 또 지나가고 있다. 원효 스님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며 우리는 잠시 후 죽음의 문 앞에 서게 될 뿐이다. 다가오는 2019년 기해년, 우리 불자들 모두는 수행으로, 종단을 책임지고 있는 소임자들은 종단혁신으로 ‘급하고도 또 급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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