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한국불교-상
키워드로 보는 한국불교-상
  • 이재형 국장
  • 승인 2018.12.17 11:23
  • 호수 14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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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종교 위상 되찾는 것보다 불자다운 불자 양성에 힘 모아야”

불자 300만 감소 조사결과 두고
정확한 분석 없이 책임전가 급급
왜곡·과장하며 정치투쟁에 악용
근본대책 마련에 도움될 수 없어

자력종교 강조에 ‘기도’ 평가절하
기도 중요성 부각돼야 종교성 회복
‘불교는 곧 민주주의’ 오해하지만
불교·민주주의는 차원 다른 개념
이재형 국장은 “불교는 서원의 종교이고 기도는 그 서원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한다”며 “기도에 관심을 갖고 정당한 복권을 시도할 때 불교의 종교성이 풍부해지고 기도하는 불자들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국장은 “불교는 서원의 종교이고 기도는 그 서원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한다”며 “기도에 관심을 갖고 정당한 복권을 시도할 때 불교의 종교성이 풍부해지고 기도하는 불자들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조계종 교육원이 12월14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교육아사리 등 전문연구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한국불교의 좌표와 나아갈 방향’ 세미나에서 ‘키워드로 보는 한국불교’주제로 기조 발제했다. 2회에 걸쳐 지면에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지만 올해 불교계에 이보다 더 적확한 말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총무원장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불교계는 심각한 갈등 양상으로 치달았고 불교계의 위상도 크게 실추된 것은 물론 불교계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올해 불교계에서 유독 많이 사용됐거나 관심을 모았던 단어, 그리고 관심을 가져야 할 키워드 7개를 중심으로 오늘날 한국불교가 직면한 문제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1. 불자감소
지난해와 올해 불교계 내부에서는 ‘불자 300만 감소’가 연일 화제에 올랐다. 조사결과를 놓고 각계에서 원인 분석이 이뤄졌으며,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 신도 단체 등에서 계층포교에 대한 성찰 및 다양한 대안 모색이 진행됐다. 동시에 ‘불자 300만 감소’에 대한 책임론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종단에 비판적인 단체들의 주된 비판 대상은 전 총무원장이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지관 스님(2005.11~2009.10 )과 자승 스님(2009.11~2017.10)이 조계종의 행정을 이끌었다. 지관 스님이 입적한 상황에서 ‘불자 300만 감소’의 화살은 당시 조계종을 이끌었던 자승 스님에게로 향했다. 특히 몇몇 재가단체 대표들은 전 총무원장 체제의 문제점으로 인해 불자 300만이 떠났음을 기고와 집회를 통해 반복적으로 각인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자 300만 감소’는 종단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상용 문구로 정착됐다. 심지어 201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도박사건의 당사자인 승가단체도 ‘불자 300만 감소’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전 총무원장 책임으로 돌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일까.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 차원을 떠나 이렇게 판단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적지 않다.

2015년 통계청 종교인구 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온갖 성추문과 범법행위, 정권의 극보수 지지 세력 자임, 반기독교 정서 확산 등으로 개신교가 2005년 처음으로 감소한 데 이어 2015년에도 더 큰 폭으로 줄 것으로 대부분 예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개신교인은 120만명 이상 늘었다. 반면 김수환 추기경 서거(2009년),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 방한(2014년) 같은 굵직한 호재들이 있었던 가톨릭이 2005년 501만여명에서 2015년 389만명으로 신도가 110만명 이상 급감한 사실도 설명하기 어렵다. 종단에 극히 비판적인 불교계 인사들도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은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이웃종교 전문가 및 종교언론에서는 정밀한 분석을 통해 불자 감소의 주된 원인을 고착화된 불교인구의 고령화에서 찾고 있다.

누구나 공과가 있다. 공은 칭찬받아야 하고 과는 비판받아야 정당하다. 총무원장을 비롯한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공격을 위해 특정 사실을 끊임없이 과장, 왜곡하는 행위는 저열하다. 더욱이 ‘불자 300만 감소’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정치투쟁에 악용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불자감소 못지않게 보다 중요한 것은 불자다운 불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불교계에서는 불교에 호감이 있으면 모두 ‘재가불자’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러나 삼귀의, 오계를 받지 않거나 받았더라도 불자로서의 기본을 지키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불교계 내부에서조차 술과 고기를 먹지 않거나 식사 전에 합장하고 ‘공양게’를 하면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불자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또 신도회라는 이름으로 주지스님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가 하면, 일부 재가불교 단체들이 특정 스님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모습들도 올해 자주 벌어졌다.

종교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불자들의 희박한 정체성은 확연히 드러난다. 개신교, 가톨릭 신자들에 비해 실천력, 자부심, 종교행사 참석률, 종교 관련 신문 및 서적, 포교활동 자율성 등에서 현격히 떨어진다. 우리가 이웃종교를 부러워해야 할 것은 신도 숫자가 아니라 신도들의 정체성과 신심 문제일 것이다. 새로운 불자들을 늘려 제1종교의 위상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불자들이 불자답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풍토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 기도
기도는 불교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초하루기도’ ‘삼칠일기도’ ‘백일기도’ ‘천일기도’ ‘철야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약사기도’ ‘나한기도’ ‘다라니기도’ ‘방생기도’ ‘순례기도’ ‘참회기도’ ‘수능기도’ 등 숱한 기도들이 있다. 그럼에도 기도는 종종 부정되거나 평가절하 된다. 명망 있는 스님들조차 “불교는 자력종교이고 수행의 종교이므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라거나 “기도는 하근기 중생들을 위한 방편”으로 표현한다. 이러다보니 모든 절에서 기도가 행해지지만 정작 불교 안에서 기도의 위상은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이러한 모순된 현상은 출판계와 학계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8년 12월3일 현재 ‘기도’를 검색하면 관련 종교 서적이 4338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개신교 서적이 총 3333종으로 전체의 76.8%, 가톨릭 서적은 349종으로 전체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불교는 111종으로 전체 2.6%에 그쳤다. 그나마 품절이나 절판된 책을 제외하면 65종에 불과하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제공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www.riss.kr)’에는 2018년 12월3일 현재 지금까지 등재(후보)학술지에 발표된 ‘기도’ 논문이 2477건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절대다수가 기독교와 가톨릭 계통 논문이며, 불교 명상법을 활용해 신과 가까워지고 영적 안정감을 모색한 논문들도 여러 편이다. 반면 불교의 기도를 다룬 논문은 ‘진각종 기도법에서 불공·불사의 의미와 특징’(김치온, 2012)과 ‘만공의 민족운동과 유교법회·간월암 기도’(김광식, 2016)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같은 수치는 종단, 불교학계, 불교단체, 사찰 등 불교계가 ‘기도’를 주제로 변변한 학술대회를 단 한 번도 연 적이 없음을 방증한다. 또한 불교학자와 지식인들이 불교현장에서 이뤄지는 기도를 외면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력종교에 대한 과도한 편중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불교의 종교성을 탈색시킴으로써 불교가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의지처가 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서원의 종교이고 기도는 그 서원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한다. 종단에서 기도에 관심을 갖고 정당한 복권을 시도할 때 불교의 종교성이 풍성해지고 기도하는 불자들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3. 민주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최고의 정치 체제로 꼽힌다. 18세기 서구에서 새롭게 부활한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 동시에 어느 사회계층도 다른 계층의 희생을 대가로 군림할 수 없다는 인도주의를 지향한다.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체제로 부각되면서 불교의 민주주의적 요소도 새롭게 주목받았다. 2600여년 전 부처님은 극단적인 신분차별제도가 있었음에도 누구나 최고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선언했다. 또 아무리 천민이라도 출가해 승가의 일원이 되는 순간 완전한 평등이 보장됐으며, 타고난 신분이 아닌 법랍이나 수행 정도에 따라 위계가 정해졌다.

불교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지금도 ‘불교는 곧 민주주의’라고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와 민주주의는 차원을 달리한다. 불교는 재물, 성욕, 음식, 명예, 수면 등 욕망을 넘어 번뇌의 불길이 꺼진 열반을 지향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고 공동체 전체 구성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되고 있는 형태’라는 특성에서 드러나듯 권력의 배분이 핵심이다. 불교가 출세간의 원리라면 민주주의는 세간의 원리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차이는 승가와 오늘날 민주주의 투표 방식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피야세나 딧사나야케의 ‘불교의 정치철학’(대원정사, 1987)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승가사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무기명 비밀투표, 귀에 속삭임, 공개투표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담마(法)에 일치하지 않을 경우, 투표 진행위원은 그 투표의 결과를 거부할 수 있었다. 이렇듯 불교적 의미에서의 민주적 결정이란 단순한 머릿수를 헤아리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이는 승가가 법의 구현 및 전승과 화합을 이상으로 하는 출가공동체라는 특성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다수의 의견일지라도 비법비율(非法非律)일 경우 타협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아무리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교법과 율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때는 소수가 다수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공동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불교와 민주주의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조계종은 선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돈 선거라는 오명에서부터 구성원 의사반영 부족, 선거 후 소송과 갈등, 위계질서 문란, 수행풍토 약화 등 논란과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이는 율장 대신 세속법이 모본이 된 종헌종법이 운영원리로 작용하고, 국가 운영 방식인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형태를 쫓은 종단의 당연한 귀결점일지 모른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세속의 선거제도를 받아들인 이상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불교적 방안과 제도적 장치가 모색돼야 한다. 그 전제 조건의 하나는 민주주의는 차선이며, 최선은 화합이라는 승가의 정신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종단 구성원들이 어떤 제도여야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지에 지혜를 모을 때 승가 운영의 기본 이념인 ‘여법’과 ‘화합’은 물론 불교의 위상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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