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율은 유리와 같아 안팎으로 밝고 깨끗이 해야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㉙

계율로 인해 선정을 얻고
선정으로 인해 지혜 열려
말과 행동이 한결 같으며
설법 기꺼이 받아 들여야

정공 스님은 법의 깃대가 있고 도량이 있어야 여래의 지혜를 지킬 수 있고 일체중생이 본래 지닌 지혜가 드러난다고 설한다.
정공 스님은 법의 깃대가 있고 도량이 있어야 여래의 지혜를 지킬 수 있고 일체중생이 본래 지닌 지혜가 드러난다고 설한다.

“극락세계 보살은 그 마음이 정직하고, 선교방편으로 설법하여 기꺼이 마음을 정하게 한다(其心正直 善巧決定).”

마음은 바라야 하고, 마음은 곧아야 합니다. ‘정직’은 요즘말로 진심입니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속이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의를 다해 사람을 대하면 손해를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손해를 보지 않고 우리는 극락세계에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손해를 볼까 두려워서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고 나도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렇게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대하면 좋지 않습니다.

서방세계 사람은 모두 진심인데, 사바세계 우리의 마음씀씀이는 그들과 같지 않습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매우 자비로우셔서 우리들을 극락세계로 접인하여 가시길 원하지만, 그때에 이르러 동학 도반들과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심을 평상시 길러서 지극한 정성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써 중생의 근기를 관하고 그 근기에 맞게 설법하는 것이 바로 선교결정(善巧決定)입니다. ‘결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문을 들은 후에 애매모호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함을 말합니다. 보살은 중생이 어떤 근기이든 그에게 정토법문을 설해 주어서 조금씩 그를 정토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경전과 논서 곳곳에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데, 나중에는 정토로 돌아갈 것을 가리킵니다.

“법을 토론함도 싫어하지 않고, 법을 구함도 싫증내지 않는다(論法無厭 求法不倦).”

이는 스스로 행하여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경전을 강설하고 법을 설하여 주며,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지치지도 싫증내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토론은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이롭게 합니다.

보살은 끊임없이 법을 구합니다. 실제로 말해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바로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선생도 학생도 발전한다(敎學相長)” 말씀하셨습니다. 문답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시하는데,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문제가 매우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질문을 하면 우리는 또렷이 이해할 수 있고, 이때 지혜가 현전합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동안 서로 발전합니다. 이 때문에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지 않고서는 불도를 원만히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대한 군중을 접촉하여야 비로소 원만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법은 구하려면 많이 구하지 말고, 전일하게 구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수명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도에서 우리의 수명은 길지 않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일하게 구해야 합니다. 극락세계에 도달하면 수명이 무량하여 많은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홍서원에서 “무량한 법문을 다 배우겠나이다” 서원합니다.

사홍서원과 관련하여 지금 여기서 해야 하는 것은 먼저 큰마음을 발하고자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겠나이다” 서원하고, 진정으로 수행하고자 “다함없는 번뇌를 끊겠나이다” 서원합니다. 번뇌가 다 끊어지면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가 청정합니다. 그래서 서방극락세계에 가서는 “무량한 법문을 배우겠나이다” “위없는 불도를 이루겠나이다” 이 두 가지를 다시 서원합니다.

“계율이 유리와 같아 안팎으로 밝고 깨끗하게 하며, 그들이 설한 법은 중생이 기뻐서 따르도록 한다(戒若琉璃 內外明潔 其所言說 令衆悅服)

유리는 계율의 청정함을 비유한 것으로 지계의 공덕을 드러내 보입니다. 일체 대승경전에서는 “계율로 인해 선정을 얻고, 선정으로 인해 지혜가 열린다” 말합니다. 선정은 청정심으로 마음이 청정해야 선정의 경계가 현전합니다. 그래서 계율의 공덕은 우리가 선정을 얻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보살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계율을 엄격히 여법하게 지킵니다. 이로부터 선정을 얻을 뿐만 아니라 선정으로부터 지혜가 열립니다. ‘안’은 마음이고, ‘바깥’은 몸입니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명(明)은 바로 지혜입니다. 또한 보살은 갖가지 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합니다. 또한 보살은 말과 행동이 상응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보살의 설법을 들으면 모두 좋아하여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법고를 크게 두드리고 법의 깃대를 높이 세우며, 지혜의 해를 비추어 어리석음의 암흑을 깨부수느니라(擊法鼓 建法幢 曜慧日 破癡暗).”

옛날에는 전쟁 시 적진으로 돌격할 때 병졸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멀리까지 들리도록 북을 쳤습니다. 여기서 법고를 치고 법륜을 굴리는 것은 모두 경전을 강설하고 법을 설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법의 깃대를 높이 세우는 것은 도량건립을 비유한 것입니다. 만약 도량이 없다면 불법을 수학하는 중심이 없고, 법을 홍양하는 기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량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도량이 없다고 말하면 세간에서 법문을 널리 유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승의 많은 종파는 모두 조정(祖庭)이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조정은 바로 첫 번째 도량입니다.

정토종의 첫 번째 도량은 혜원(慧遠) 대사께서 건립한 것으로 바로 현재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로 우리 정토종의 발단이자 시작입니다. 이후 오대산 주변의 현중사(玄中寺)는 정토종 중흥의 도량이었습니다. 청말 민초에 인광(印光) 대사께서는 소주(蘇州) 영암산(靈岩山)에 머무셨는데, 머문 시간이 오래되어 그곳에서 정토를 널리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주 영암산사도 중국 정토종의 주요도량이 되었습니다.

법의 깃대가 있고 도량이 있어야 여래의 지혜를 지킬 수 있고, 일체중생이 본래 지닌 지혜가 드러납니다. 불법의 가르침과 인도에 의지해 수학해야만 우리의 지혜가 비로소 현전할 수 있습니다. 무량한 법문의 의의는 오직 사람을 도와서 미혹을 깨뜨려 깨달음이 열리게 함에 있습니다.

“지혜의 해”는 개인마다 지닌 자성의 지혜를, “어리석음의 암흑”은 무명을 각각 뜻합니다. 보살은 중생에게 증상연(增上緣)을 베풀어 무명을 깨뜨리고 지혜를 개발하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설법의 종지가 있는 곳입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