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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집-누군가의 방

기자명 임연숙

수묵에 대한 고정된 인식의 틀 벗다

전통적 수묵 기법 계승하면서
자연이 아닌 생활공간에 관심
전통·현대 엮어 새 영역 제시

이윤빈, 집-누군가의 방,11752,순지에 수묵담채.
이윤빈, 집-누군가의 방,11752,순지에 수묵담채.

‘공간인식 : 보다’로 시작한 이윤빈 작가의 개인전에서 처음 작품을 접했다. 그림들은 담백한 수묵 담채기법으로 실내 풍경과 외부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20대 작가의 수묵화는 어떤 느낌일까. 전통회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표현방법이 궁금했다.

수묵화는 그림을 그리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철학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서양회화의 시작은 투시법과 빛과 그림자, 명암법을 활용해 사물을 똑같이 보이게 묘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반면 수묵화는 전혀 다른 기준과 방법으로 접근한다. 동양의 자연관에 기인하여 산수화는 고원(高遠), 평원(平遠), 심원(深遠)이라고 하여 높고 깊은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시점을 입체적으로 활용했다.

자연 풍광을 그림에 담아 오랫동안 즐기고자 한 옛사람들의 뜻을 받들기 위해 수묵산수는 작가들이 활용한 방법이자 기법이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착시효과나 꾸밈이 아니라 사물과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묵화는 활용되었다. 젊은 작가들이 무색무취에 가까운 수묵화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단지 전통의 계승이라는 사명감은 아닌 듯싶다. 수묵화의 정신성이라는 무게감이나 의무감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선택지의 하나처럼 느껴진다.

이윤빈 작가는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고민한다. 작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생활공간과 여행지나 관광지를 방문했을 때의 공간을 표현하면서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 존재에 대한 이야기,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개인의 공간을 제3의 시각으로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통의 재료인 수묵 담채화 기법에 테이핑을 하고 그림을 그려 테이핑 한 부분은 먹이 스며들지 않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개인 공간으로서의 ‘집’과 사회적 공간으로 ‘처음 마주하는 특정 장소’를 시리즈로 작업하고 있는데 소개된 그림은 개인공간으로서의 ‘집’ 그중에서도 누군가의 방이다.

‘집-누군가의 방’은 추측하건대 작가의 방이 아닌가 싶다. 단정하게 정리된 방을 한쪽 면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붓을 가로로 눕혀 전체적으로 반복되는데, 화면을 꽉 채워 색을 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모필의 흔적이 드러나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공개된 공간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방은 그 누군가의 가장 개인적인 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집을 주제로 한 시리즈 작품은 외부에서 바라본 베란다의 창문 풍경에서 시작해 거실, 누군가의 방, 욕실 등으로 이어진다. 수묵화에서는 주로 산수풍경 등 자연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실내풍경이나 정물화를 그리는 것 또한 현대적 시각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씨줄과 날줄을 잘 엮어낸 젊은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개인마다 기억하고 경험하는 공간이 다르고 열린 공간에 대한 인식 또한 다르다. ‘집-누군가의 방’이라는 화두 속에 떠올리게 되는 공간의 느낌이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그림에 표현함으로써 수묵의 동시대적 해석을 만나게 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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