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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와 명상

기자명 심원 스님

부처님 전에 올려진 축원문은 일반 서민들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축원문엔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가장 절실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발원하는 축원문 내용은 사회 현안문제와 직결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부처님이 가장 많이 듣는 발원을 꼽는다면 단연 ‘속득 취업성취’ 발원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최우선으로 중시한 것이 일자리 창출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엔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매일 일자리 관련 사안들을 직접 챙겼다. 그런데 그토록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현 정부의 가장 실패한 분야가 ‘일자리’ 관련 정책이라고 혹평받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들고 나온다 하더라도, 누구나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실업률이 획기적으로 감소하여,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실업은 가속화 되고 그에 따라 예기치 못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 모든 나라에 걸쳐 있는 문제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18년에 저술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미래에 닥칠 가장 심각한 현안문제는 인류 차원의 ‘대량실직’이 될 것이라 단언하였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능력을 갖춘 AI로봇은 작업 처리 속도와 능력 면에서 인간을 능가할 것이고. 여기에 생명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획기적 발전들이 가세하여, 인공지능이 인간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까지 획득하는, 그러한 때가 오면 단순 노동 분야는 물론이고, 전문직과 심지어 창작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 AI로봇이 인간을 밀어내고 그 영역을 대신할지 모른다. 경제적 잉여 인력으로 전락한 수십억 명의 인간이 새로운 ‘무용(無用)’계급으로 부상하는 사태가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난관에 대처하면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명상’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고유한 영역이 의식 혹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지금 선진국 지식층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번지고 있는 명상열풍은 이렇게 예측되는 미래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20~30년 전만해도 명상은 불교나 요가 수행자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2020년을 앞둔 지금은 ‘명상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만큼 명상열풍이 불고 있다. 세계에서 명상인구가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4차 산업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명상은 이제 미국 주류 문화의 트렌드가 되었고, 명상관련 산업도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SK를 필두로 LG, 삼성 등의 대기업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오래이고,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 명상 프로그램을 찾아 순례하고 있다. 자비명상, 호흡명상, 마음챙김 명상, 염불명상, 이완명상, MBSR 등 다양한 유형의 명상들이 넘쳐난다.

AI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할 일이 없어진 인간이 소일거리로 하든, 세계적 기업이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인간의 잠재능력 개발에 활용하든, 아니면 스트레스 완화와 마음의 평안을 위한 치유가 목적이든, 명상열풍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명상의 기반이 불교 수행이기 때문에 불교가 새로운 호기를 맞은 듯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명상열풍이 포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스스로 불교인이라 생각하는 상당수 사람들이 명상센터는 찾지만 법당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 늦기 전에 종단 차원에서 한국불교의 명운을 걸고 명상활용 프로그램개발에 주력하지 않는다면 눈앞에 도래한 ‘명상의 시대’가 불교를 스쳐 지나가 버릴지 모른다. ‘2019년은 불교명상 기반 구축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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