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불교다] 2. 초기불교의 기도
[기도가 불교다] 2. 초기불교의 기도
  • 이필원 교수
  • 승인 2019.01.02 13:26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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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에서의 기도는 일반적 기도가 아닌 서원의 의미가 강해

무엇을 꼭 이루게 해달라는
일반적인 기도 경문은 없어

부처님 가르침을 찬탄하고
뭇 생명의 행복 발원이 기도

초기경전 기도 관련 내용은
한 마디로 ‘수호’ 의미 강해

삼보 의미 바르게 아는 것이
현실적 고통·두려움 벗는 길

가르침 실천해 공덕 쌓는 게
뭇 존재 행복 추구하는 기도

불교 아는 것이 기도의 시작
서원 세워 실천이 기도의 끝
붓다의 설법. 산치대탑 서문.

기도는 종교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도방식은 종교마다 다르다. 같은 종교라고 해도 시대별로, 지역별로, 종파별로 다른 모습을 갖기도 한다. 그럼, 초기불교에서는 어떠할까? 기도라는 말은 있는가? 기도에 해당하는 말이 있다. 빨리어로 빠니디(paṇidhi)가 기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도보다는 ‘서원’이라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기도와 서원은 같은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다. 의미상 차이가 있다. 기도가 자신의 바람을 종교적 대상에게 청원하는 것이라면, 서원은 일종의 서약과도 같다. 즉 서원에는 실천이 수반된다. 예를 들어 ‘5계를 지킬 것을 서원했다’라고 하면, 5계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기도가 아닌 ‘서원’을 말하는 것은 단순하게 부처님에게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서원을 세워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보살의 서원이라는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그냥 빠니디라기 보다는 ‘삼마(sammā)’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삼마빠니디’, 즉 ‘바른 서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팔정도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팔정도의 모든 덕목에는 ‘삼마(sammā)’ 즉 ‘올바른’이란 접두사가 붙는다. 예를 들면 정정진을 삼마와야마(sammāvāyāma)라고 한다. 정진은 ‘노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냥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바른(sammā)’이란 ‘완전하게, 올바르게, 딱 들어맞게’ 등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것에는 자신의 입장이나 욕구가 배제된 ‘이치에 합당한’, 혹은 ‘부처님 가르침에 딱 들어맞는’이란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경전에서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기도의 경문이 나오지 않는다. 즉 실제 경전에서는 ‘부처님 ~을 이루게 해주소서’라는 형식의 문장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뭇 생명의 행복을 기원하고, 자신과 그들을 위해 실천해야 할 서원의 내용, 그리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그 분으로 인해 모든 존재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숫따니빠따’에는 여러 작은 경전들이 전한다. 그 중에서 지금 남방의 여러 불교국가에서 일상으로 독송하는 경전이 있는데 하나는 ‘자애의 경(Mettasu tta)’이고, 두 번째는 ‘보배의 경’, 세 번째는 ‘위대한 축복의 경(Mahāmaṅgalasu tta)’이다. ‘자애의 경’은 모든 존재의 행복을 기원하는 경전이고, ‘보배의 경’은 삼보를 찬탄하는 경전이며, ‘위대한 축복의 경’은 ‘최상의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선혜보살이 연등불에게 예경하는 모습.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디가니까야’의 ‘이따나띠야의 경(Āṭānātiyasutta)’에서는 빠릿따(Paritta, 보호주)를 통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상윳따니까야’의 ‘깃발의 경(Dhajaggasutta)’에서는 부처님을 열 가지로 생각하면(만약에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르침을 생각할 수 없으면 올바른 수행승의 모임을 생각하면) 공포나 전율, 소름끼치는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가르침이 설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순산을 기원할 때는 ‘앙굴리말라의 경(Aṅgulimalasutta)’을, 병이나 질병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때는 ‘보장가숫따(Bojjhaṅga sutta)’가 추천된다. 그 외에도 몇몇 경전들이 더 있다. 이들 경전은 행복과 축복을 기원하고, 두려움이나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본글에서는 이들 경전들 가운데 ‘자애의 경’ ‘보배의 경’ ‘위대한 축복의 경’과 ‘깃발의 경’의 내용을 통해 바른 서원을 담은 기도의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자애의 경’은 후렴구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소서(sabbe sattā sukhitattā)’가 핵심 언구가 된다. 어떤 경우에도 분노나 증오 때문에 다른 존재의 고통을 바라서는 안 되며, 행복을 기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방식은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해야 한다. 또한 ‘삿된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 도덕적 심성을 갖추고 감각적 욕망을 다스려서’ 윤회에 들지 않을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보배의 경’은 공통하는 후렴구가 ‘이러한 진실로 인해 모두 행복하소서(etena saccena suvatthi hotu)’이다. 이 경전의 내용은 사실 부처님에 대한 찬탄이다.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바, 그리고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성자들과 승가(참된 수행자 모임) 안에 훌륭한 보배(ratanaṃ paṇītam)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 모든 존재는 행복하소서라는 내용이다.

‘위대한 축복의 경’에서는 천신이 부처님께 최상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여쭙고, 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시는 내용이다. 공통하는 후렴구는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etaṃ maṅgalamu ttamaṃ)’이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계행을 지키고, 공덕을 쌓으며 올바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최상의 축복이라는 내용이다.

‘깃발의 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수행승들을 불러 홀로 숲에서 수행하다가 갑자기 공포나 전율, 두려움이 생겨날 때 대처하는 방식을 설하시고 있다. 그 내용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에 대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경전에서의 핵심 언구는 ‘진실로 나/ 가르침/ 승가를 떠올려 지속적으로 생각하면(Mamañhi/Dhammañhi/Saṅghañhi vo anussarataṃ)’이다.

초기경전 속에 담겨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목적이 분명하다. 그것은 뭇 생명이 ‘온전한 행복’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실천 수행하는 승가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다. 그리고 이들 경전을 독송하는 것에는 부처님께서 모든 존재들에게 인간의 자손들을 위한 ‘자비와 수호’의 당부도 곁들여 있다.

“모든 존재들은 귀를 기울이십시오. 밤낮으로 공물을 바치는 인간의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방일하지 말고 그들을 수호하십시오.”(Sn.223)

위 경문은 ‘보배의 경’의 두 번째 게송이다. 이 경전은 심한 가뭄과 기근, 역병과 잡귀들로 고통 받는 웨살리국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처님을 초대하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보배의 경’을 먼저 가르쳐주고 왕자와 함께 도시를 다니며 경을 읽고 부처님 발우에 물을 담아 뿌리도록 했다. 그러자 악귀들이 물러나고 사람들이 질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경전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덕에 대한 찬탄이다. 그리고 이 경을 읽게 되면 모든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인간들을 수호하라는 부처님의 당부로 시작한다. 결국 초기경전에서 기도와 관련된 경전의 내용은 한 마디로 ‘수호’의 의미가 강하다. 자신과 뭇 생명을 모두 지켜내고,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경들을 ‘수호경’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수호는 부처님이나 천신들에게 ‘저를 지켜주소서’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내용을 ‘상윳따니까야’에 나오는 ‘자호경(Attānarakkhitasutta)’이라는 작은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약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몸과 말과 뜻으로 나쁜 행위를 하면 아무리 강력한 군대로 지킨다고 해도 결코 수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몸과 말과 뜻으로 자제하고 부끄러워하는 자가 수호 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이 수호의 의미가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보배의 경’과 ‘깃발의 경’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청정승가의 덕을 올바르게 알고 기억하는 것을 통해 현실적인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애의 경’에서와 같이 모든 존재들에게 자애를 베풀겠다는 서원, ‘위대한 축복의 경’에서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공덕을 쌓는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다른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식 ‘기도’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초기불교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바가 성취되기를 자신이 믿는 어떤 존재에게 단순하게 청원하는 것을 기도라고 보지 않는다. 부처님이 어떤 존재이고, 그 분의 가르침은 어떤 특징을 가지며, 청정한 수행을 실천하는 승가가 성취한 바는 무엇이며 어떤 공덕을 갖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스스로 공덕을 쌓고 자애를 베풀 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이해하여 ‘서원’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기도의 마지막’이 된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기도에는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새해에는 ‘보배의 경’과 ‘깃발의 경’을 독송하면서 삼보가 갖춘 덕의 내용을 알고, ‘자애의 경’과 ‘위대한 축복의 경’의 독송을 통해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는 한 해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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