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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다시 서야한다

기자명 진원 스님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먼지가 하얗게 일어나는 그 길이 얼마나 척박한 지, 그리고 그 다양하고 차별적인 인권침해의 삶들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이곳이 부처님께서 평등을 부르짖던 땅이었다. 부처님은 그 시대 기층민들이 받는 인권침해와 불평등한 삶을 평등의 지위에 올리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했다. 이로 인해 기득권 세력들에게 수없이 많은 견제와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묵묵히 그길을 걸어갔다. 이런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는 부처님이 현존하던 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

처음 여성폭력과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구조적으로 여성이 차별을 받는지, 수면 위의 여성들 삶과 수면아래 여성들 삶이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고질적이고 관습적인지, 여성들 스스로 얼마나 순종적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구니의 한사람으로서 순종하고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다.

현대는 인권의 시대이다. 인권도 차별받는 시대이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없는 노인과 아동이라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과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품화되고, 소유화 되고, 통제당하며,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으로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카메라와 휴대전화 등 디지털기기를 이용해 여성들의 신체를 불법적으로 촬영하고, 그 촬영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포시켜 한 여성의 삶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간다.

어디 그뿐인가? 성소수자의 인권차별은 이 시대의 또 다른 화두가 아닐까 한다. 부처님이 이 시대 이러한 환경에 함께 하신다면 어떤 상담을 하셨을까? 어떤 방편을 주시고 답을 주셨을까?

폭력 피해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이웃종교에서는 30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인적자원을 발굴하고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했다. 그들은 각 분야별로 각자의 전문성에 따라 사목을 정하고 지속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성을 위해 워크숍과 사례발표 등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에 비하면 불교는 이제 겨우 걸음마 수준이고 그나마 범위도 협소하다. 스님들은 여성의 감수성, 인권감수성, 성평등 감수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어디서 전문성과 역량을 키워야 하는지 방법론을 모르고, 이를 이끌 구심점도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방향을 재정립하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조계종 차원에서 스님들에게 대사회활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관심분야를 갖게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가 전에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경험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장 활동가들 중에 스님과 재가불자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현재 종단에도 상담전문가를 양성하는 불교상담기관이 있고, 여성긴급전화1366경북센터 내에도 여성복지교육원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에 여성주의와 성평등 감수성을 강화시키고 젠더폭력피해에 따른 위기여성들을 보호하는 활동가를 양성할 수 있는 산실이 될 수 있다.

이제 불교에서도 10년의 경험이 쌓였다.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지만, 활동가들을 양성할 기관과 프로그램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후에 불교계에 스님들이 하고 있는 불교상담 및 심리치료 등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당당한 여성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비구·비구니 재가불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때 차별로 인해 파생되는 젠더폭력피해 위기여성의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차별은 편견에서 시작되고 학습된다. 부처님이 평등을 위해 먼지가 하얗게 날리는 척박한 길 위에 섰던 그 위대한 걸음을 다시 새겨봐야 할 때다.

진원 스님 여성긴급전화1366경북센터 센터장 suok320@daum.net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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