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율려와 포도 그리고 발우공양

기자명 고용석

깨어있음과 연민으로 먹어야 한다

다른 생명 취함에 배려 있어야
발우공양의 정신 현대에 맞춰
대중화 비건채식운동 실천을

‘부도지’는 신라시대 박제상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비서를 정리하여 저술한 책으로 1만4000년 전 파미르고원을 발원지로 펼쳐졌던 한민족의 상고문화를 다루고 있다. 이 부도지의 마고성 신화에 따르면 그때는 우주의 음악과 빛 즉 율려로 세상과 우주를 다스리고 사람들은 대지의 젖을 마셨다고 한다. 어느 날 포도를 따먹고 처음으로 5가지 맛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생명을 먹은 최초의 일로 이때부터 재앙은 시작된다. 원래 없던 이빨이 생겨나고 피와 살이 탁해져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다툼과 분열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마고성 사람들은 네 무리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것이 인류의 4대 문명이며, 그중 한 갈래가 환국 배달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고구려의 국시가 마고성시대의 회복을 뜻하는 다물이었다 한다. ‘부도지’는 ‘환단고기’의 뿌리인 셈인데 이것에 대한 단상은 이렇다.

첫째, 신화란 영적가능성의 실마리다. 외부적으로는 인류시원을 설명하는 역사의 전개 같지만 실제로는 인류의 내부적 잠재성을 가리킨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 즉 본래 우주의 빛과 음악을 일상 속에서 다시 연결하는 것이 율려다. 이 율려야말로 성스러운 일상이요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이고 마고성신화의 실현이다. 타고르와 간디가 대양에 비유하며 자신들은 ‘그 대양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며 지극히 존경했던 까비르는 노래한다.

“하아프의 소리 들려온다/ 손도 없이 발도 없이 춤이 시작된다/ 손가락이 없이 하아프를 켠다/ 귀 없이 그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귀다. 동시에 그는 듣는 자이다/ 문은 굳게 닫혔다. 그러나 그 속에 향기가 있다./ 이 만남은 누구도 엿볼 수 없다. 그러나 지혜 있는 이는 이를 이해할 것이다.”

둘째, 물론 신화 속 고대사가 역사적 진실인지 아닌지는 전문가의 몫이다. 하지만 진실여부를 떠나 이런 고대사를 신화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킨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우리민족이 얼마나 영적인 민족인가를 짐작케 한다.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 했다. 홍익인간의 인간은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과 무생물까지 포함한 인간이다. 이것이 생명이다. 사실 역사도 결국 마음의 행로에 다름 아니다 수많은 역사 속에 인간의 마음행로가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전일함을 깨치는 게 역사공부다.

셋째, 무엇보다도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을 죽여 음식을 취하는 것은 크게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다. 에덴동산의 사과처럼 포도를 탐하고부터 모든 분열과 분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삶에서 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삶의 전제조건이다. 율려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의 성찰이 필요하다. 현대의 대표적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 삶의 전제와 인간의 마음을 화해시키는 데서 모든 신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삶의 전제에 대해 고민이나 문제의식조차 없이 공장식 사육, 대규모 단일경작, 유전자조작 등 생명이 조작 상품화되는 오늘날 현실과 비교할 때 신화 속 인간마음은 지극히 순수하고 우주적이다.

생명체의 존속은 또 다른 생명체의 생명에 기댄다. 우리는 오직 ‘필요’만큼의 해를 끼치고 다른 생명체를 취함에 겸손하고 조심하며 배려해야한다. 깨어있음과 연민의 마음으로 살아 있는 존재의 고통을 덜어주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먹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발우공양과 그 정신이 현대에 맞게 대중화된 비건채식운동이 맞닿아있다. 음식은 삶에서 죽음으로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흘러가는 원천이자 은유이다. 섭식이 지닌 영적 공동체적 가치는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신화와 종교적 전통에 깊이 새겨져있다. 우리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마음 설레는 더 큰 전체의 일부라는 신비에 의식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장례식과 공양 때뿐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