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재를 시작하며
1. 연재를 시작하며
  • 강병균 교수
  • 승인 2019.01.03 10:26
  • 호수 147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학세계, 정밀한 논리 바탕으로 한 분석적 사유세계

수학은 범인들에게 설명 불가능
종교경전엔 수학 나타나지 않아
수학세계·정신세계 연관 논할것

사람들은 수에 우주의 신비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종교적 수행을 하면 수의 신비를 깨달아 우주의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계에는 수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간단한 산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산가지[算木]를 이용하지 않고도 큰 수를 사칙연산(四則演算)한다는 등의 이야기 정도이다.

현대 수학은 범인들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년간 훈련을 쌓지 않는 한 수학용어조차 이해하기가 힘들다. 종교경전에는 수학이 나타나지도 않거니와, 수에 대한 깨달음도 없다. 수학을 깨달은 종교수행자들도 없다. 종교수행을 통해 수학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전무하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다년간 피땀을 흘리는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수학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 다리를 꼬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지식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을 하면 더욱 불가능하다. 수학의 세계는 정밀한 논리가 바탕을 이루는 분석적 사유의 세계이지, 사유가 필요 없는 계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찰은, 방대한 지식과 깊은 사유 끝에 오는 것이지, 무지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개·소·말·양·닭·돼지·당나귀·앵무새·물고기 등 동물들이 불교적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다.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추상적 사유는 언어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언어의 세계이다. 언어가 없는 사람은 깨달음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설일체유부의 5위75법에 언어를 관장하는, 명신(名身)·구신(句身)· 문신(文身)이라는 법(法 근본 구성 요소)이 등장하는 것이다.

수학을 하기 위해서도 수학적 개념을 익혀야 하며, 수학적 개념을 익히기 위해서는 수학적 용어를 익혀야 한다. 35억 년 인간 진화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지식과 통찰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영장류를 거쳐 인류의 지위에 오른 후에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지식과 통찰의 결과이다. 육화(incarnation)이다.

종교적 계시란, 사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초월적 세계로부터 지식이 흘러들어오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절대적이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는 상대적 지식과는 다르다. 문제는 인간의 발전이, 과학기술적 인문사회적 지식인 상대적 지식에 의해서 발전했지, 종교적 지식인 절대적 지식에 의해서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제·정치·의학·농업·교통·통신·과학 등은 모두 상대적 지식의 산물이다.

무지한 자는 인류발전에 공헌한 적도 없고 인류발전을 선도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 혹은 군집생물인지라 개인은 집단의 이익을 공유한다. 이로 인하여, 일부 영악한 자들은, 무식하거나 사악해도,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능력이 출중해 권력을 잡고 온갖 이익을 다 누린다.

이 세상에 정확히 같은 것은 없다. 사과라 해도 사과마다 크기와 모양은 다 다르다. 그럼에도 하나 둘, 수를 부여한다. 사과 {A, B}와 사과 {C, D}는 모양 크기 색깔이 다르지만, 두 개라는 즉 2라는 수로 통합된다. A, B, C, D를 다른 것들이 아닌 사과로 인식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같은 수를 부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수란 분리의 상징이다. 수란 다른 것 중에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귀는 몸에 붙어있으므로 어디서 어디까지를 귀라고 명확하게 분리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우리 몸에 귀가 2개가 있다고 한다. 물질이 아닌 것도 센다. 콧구멍은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이 없는 구멍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우리 몸에 콧구멍이 두 개가 있다고 말한다, 신비한 일이다.

수학에는 다른 신비가 있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수학의 세계와 정신세계의 연관성과 나아가 수학의 세계와 영적 세계의 연관성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bgkang@postech.ac.kr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광조 2019-02-17 00:18:06
강병준교수님의 법보신문의 투고를 간접적으로 읽었습니다.수준 높은 투고를 보며 불교와 수학의 합리적인 접목에 기대가 큽니다

무애행 2019-01-06 20:03:33
기대됩니다.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생각과 표현으로 재미있는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합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