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재를 시작하며
1. 연재를 시작하며
  • 고명석
  • 승인 2019.01.03 10:30
  • 호수 147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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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토세계는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탄생했다

발원은 꿈과 희망의 종교적인 확신
불교의 역사는 보살과 서원의 역사
지속적인 열정으로 끝없이 이어져
회향 담겨 탐욕과는 명확히 구분
꿈과 희망이 종교적 확신과 비원으로 연결된 것이 발원이요 서원이며 원력이자 행원이다.
꿈과 희망이 종교적 확신과 비원으로 연결된 것이 발원이요 서원이며 원력이자 행원이다.

아름다운 삶과 역사 창조의 동력은 꿈과 희망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삶은 공허하며 무기력하다. 인간은 현실을 발판으로 삼아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 이상을 현실 속으로 앞당기며 살아간다. 현실의 절망과 고통, 결핍과 미완의 존재에서 꿈과 희망의 나래를 펴고 보완, 완성, 충족, 행복과 평화의 가치 창조를 향해 날개 짓 한다.

꿈과 희망이 종교적 확신과 비원으로 연결된 것이 발원이요 서원이며, 원력이자 행원이다. 그래서 서원은 한순간 식어버리는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열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강물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그로 인해 무명에 휘말려 정처 없이 떠내려가지 않고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결국 맑은 물로 회귀한다. 그러기에 서원은, 그 원력의 몸짓은 보살의 삶이요 붓다의 생명으로 돌아가는 삶이도 하다.

불교의 역사는 보살의 역사요 서원의 역사다.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보살로서 서원의 역사를 살았으며 그 서원을 간직한 삶이 어떠한지 앞서 길을 가며 몸소 보여주었다.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극락정토나 약사여래의 동방 만월세계, 미륵부처님의 도솔정토나 아촉불국 등 다양한 정토세계는 모두 불보살님들의 원력으로 탄생한 세계다. 그러한 정토세계는 원력으로 형성되어 있기에 파괴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그가 잘났든 못났든, 뛰어난 인물이든 성소수자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이든, 정토세계에 태어나길 발원하면 그 세계 부처님의 가피력에 힘입어 거기로 가서 태어나게 된다. 사람이 죽어서도 떠나지 않고 언제 어느 때나 그의 앞길을 인도하며 정토로 이끄는 것은 원력이라고 ‘보현행원품’에서는 말한다. 원력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업력으로 잘못된 길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서며 사람들이 바라던 이상세계로, 정토로 이끌며 앞당긴다.

삶에는 업생(業生)의 삶과 원생(願生)으로서의 삶이 있다. 자신이 지은 업에 이끌려 정처 없이 떠돌며 원망과 고뇌 속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삶이 업생으로 이어지는 중생놀음이라면, 전체적 관계망 속에서 서로를 살리면서 자신을 무한하게 열어가며 윤회의 흐름에 얽매이거나 구속되지 않는 창조적 삶이 원생으로서의 생명이며 보살의 삶이다.

현실의 우리국토가 청정 불국으로 변화하는 것도 보살의 원력으로 말미암는다. 보살의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유마거사는 “내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이 완성되고, 중생이 완성되면 국토가 청정하다”고 말한다. 이 청정한 마음은 곧은 마음인 직심(直心), 깊은 마음인 심심(深心), 모든 공덕을 세상에 회향하는 회향심(回向心)과 연결된다. 회향심이란 나의 공덕을 뭇 생명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나누고 돌려주는 마음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아끼며 존중하기에 거기서 지혜 방편이 나와 뭇 생명의 삶을 완성시킨다. 바로 현실의 정토도 보살의 원력으로 완성된다는 의미다.

강조하건대 회향은 나의 능력, 재산, 보살핌, 자비심 등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불보살님들은 자신의 공덕을 뭇 생명들에게 회향한다. 대승의 불보살님들은 공에 투철하여 걸림이 없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엮어 있음을 투명한 시선으로 직시하고 있기에 자신이 지은 공덕을 모든 생명에게 되돌린다.

이러한 불보살님들의 회향의 힘이 작용하여 사람들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여러 성현들의 격려와 지지 속에서 불국정토로 들어서거나 만들어나간다. 한 마디로 나의 서원이나 원력 속에서는 불보살님을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인연이 형성한 가피력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불교를 자력종교라고 주장하며 타력적 기도나 염불을 비불교적 기복신앙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가끔 만나게 된다. 물론 불교에 대한 별다른 이해 없이 편의적 욕망에 따라 벌어지는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기도는 비판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회향의 정신에 입각한 기도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수행 또한 자력적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력적인 나 자신의 정진이 타력적인 불보살님의 회향의 힘이나 주변 여러 인연들의 도움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갈 때 소중한 수행의 결실을 맺는 것은 물론 그 성취 효과도 빠른 파도를 타게 된다. 자력속에 타력이 작용하고 타력 속에도 자력이 스며드는 법이다.

우리의 서원에도 이러한 타력의 힘이 저 하늘에서, 저 숲속에서, 그리고 저 어린 꼬마로부터 나이 지긋한 동네 사람들의 공감과 미소에서 비둘기처럼 날아든다. 그래서 이상과 생명세계의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나의 길은, 우리의 서원은 외롭지 않다. 서원으로 불국토를 이루는데, 원력으로 나의 삶을 가꾸는데, 발원으로 꿈과 소망, 행복의 길로 들어서는데 어떠한 장애나 공포도, 절망이니 좌절도 자리 잡지 못한다.

우리의 욕망이 서원의 힘으로 전환되어 힘찬 역사 창조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도 이 회향의 정신 때문이다. 서로 함께 하고 나누며 돌리는 회향의 정신은 서로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전체를 아름답게 만든다. 이렇게 서원에는 전체와 함께하는 회향의 정신이 담겨있기에 고독하거나 두렵지 않으며 탐욕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 서원은 우리들의 결핍과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칠흑 같은 안개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절망, 두려움, 공포에서 나 자신을 해방시킨다. 그래서 서원이 있는 삶은 힘차고 밝으며 행복하고 평화롭다. 그렇게 원을 발하는 순간 이미 거기에 도달에 있는 확신이 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가족·이웃·사회의 아픔과 치유도, 나·가족·이웃·사회의 이익과 행복도, 나·가족·이웃·사회의 해탈과 평화도 이러한 서원으로 앞당겨지고 완성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불보살님께 예경하거 나, 가족, 이웃, 직장, 사찰, 종단, 사회, 국가 등의 고통의 치유, 그리고 행복과 평화를 위해 서원을 발해볼 일이다. 그렇게 서원을 발하며 아침을 시작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그의 표정과 힘찬 발걸음에서 드러난다. 원을 발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그의 느낌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을 밝게 물들이고 활기차게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에 좌절과 절망이란 없다. 그 사람의 가슴은 항상 뜨거운 열정으로 타고 있을 것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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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9-09-10 17:59:10
새롭게 일상을 열어가기를 발원하며 이 글을 읽었습니다.
자신을 반추하면서 일주일에 한편씩 다시 읽으며
제 발원을 이루도록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