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전병호의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48. 전병호의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 신현득
  • 승인 2019.01.03 10:32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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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 올라 주워든 돌을 보면서
활화산 떠올리고 나라의 시작 생각

돌에 그날 온기 남았음 느끼며
부지런히 씨앗을 심어 거두고
부모에 효도하란 가르침 내린
시조의 애타는 목소리 듣는 듯

백두산이 열리면서 불기 2563년(2019) 기해년 꿀꿀이 해가 시작되었다. 백두산은 우리민족의 근원지이며, 겨레의 성지로서 옛적부터 신성하게 여겨 왔다. 백두산은 아득한 옛날 활화산이었다. 불을 뿜으면서 산 높이가 이뤄져 2744m가 됐는데, 우리나라 산의 최고봉이다.

불을 뿜어내던 분화구에 물이 괴어서 화산호, 천지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가 시작되던 첫날, 이 호숫가로 우리의 시조 할아버지가 내려오셨는데, 수미산 제일 꼭대기의 하늘나라, 도리천의 왕 제석의 왕자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자 일연 스님은 제석을 환인(桓因)으로 그 왕자를 환웅(桓雄)으로 기록하였다. 우리 역사의 시작이 이처럼 불교의 세계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불교도만이라도 알아야 한다.

도리천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미산 남쪽, 염부제(閻浮提)의 지구촌 동방, 백두산 둘레의 땅을, 도리천에서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 불렀다. 왕자 환웅이 삼위태백을 내려다보고 관심을 가지기에 아버지인 도리천왕 환인이 왕자 환웅에게 하늘의 징표인 천부인 세 개와 무리 3천을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도리천 왕자 환웅은 이 삼위태백으로 내려와 신의 도시 신시(神市)를 열고 360가지 제도를 마련해서 후손을 다스렸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때의 백두산 돌은 활화산의 온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시조 할아버지는 이 따끈한 돌을 만지면서 ‘아침나라(조선)’라는 국호를 먼저 정하고, 이 많은 산 이름, 강 이름, 수많은 나무 이름, 풀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지금도 백두산에 가서 돌을 만지면 할아버지 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 전병호

무심코 발밑에 밟혔다.
구멍 숭숭 뚫린
까만 돌 한 개.

“쾅쾅! 우르릉.”
화산 폭발할 때
용암 한 덩어리.
불티처럼 튀어나왔을 거야.

수천 년,
천지 기슭을 뒹굴었을 거야.

한참 만졌더니
아직도 불기가 남아 있는 듯
따뜻하다.

손에 꼭 쥐니
저도 힘을 주는지
돌이 더 단단해진다.

전병호 동시집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2015)

백두산에 오른 시인이 천지 가에서 돌 한 개를 주웠다. 구멍 숭숭 뚫린 돌이다. 시조 할아버지의 체온이 느껴지는 돌이다. “백두산이 불을 내뿜을 때 불덩이로 솟았다가 식어서 돌이 되었구나.” 시인의 생각은 백두산이 활화산이었던 때를 더듬는다. 그리고 나라가 시작되었던 때를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면서 돌멩이를 만졌다. 그러다가 아직도 그날의 온기가 남아 있는 걸 느낀다. 따뜻하다. 시조 할아버지가 만졌던 돌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조 할아버지의 체온이 닿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후손에게 부지런히 씨앗을 심어 거두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을 내리셨다. 백두산 돌을 만지니 시조 할아버지의 애타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시의 작자 전병호 시인은 청주 출신(1953)으로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동시집 ‘꽃봉오리는 꿈으로 큰다’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등을 내었고, 방정환문학상, 소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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