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생의 순간과 슈만 교향곡 ‘봄’
1. 탄생의 순간과 슈만 교향곡 ‘봄’
  • 김준희
  • 승인 2019.01.03 10:37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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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탄생 경이로움 나타낸 완성된 풍경 연상

당김음 많은 스케르초 악장은
아시타 찾은 숫도다나왕 유사
모든 악기 총출동 마지막 악장
모두 성취한 부처님 탄생 축하
마야 부인이 룸비니 동산에서 싯닷타를 낳는 모습.

교향곡(symphony)은 그리스어로 함께(syn)와 울리다(phone)가 합쳐진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원래 동시에 울리는 음, 또는 완전한 협화음을 뜻한다. 거의 모든 악기들이 총망라 되어있는 오케스트라가 함께 울리며 뿜어내는 음향은 마치 거대한 우주의 움직임과도 같다.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작곡가에게는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를 완성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로베르트 슈만은 드라마틱한 인생처럼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독특하여 시기별로 특정 장르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학생시절부터 1833년까지는 기교에 집중된 피아노 작품을 주로 작곡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근육 강화를 위해 도구를 개발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838년까지는 소나타와 환상곡 작품17과 규모가 큰 곡만 작곡했으며, 1840년에는 성격적 작품들을 썼다. 또 그해에는 아내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모두 쏟아 수십 개의 가곡을 작곡했다. 모두 평소 존경하던 슈베르트의 작품 못지않게 훌륭한 곡이었고, 슈베르트가 평생을 훌륭한 교향곡의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처럼 슈만 역시 교향곡에 대한 갈망을 계속하게 되었다. 실제로 슈만은 몇 해 전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유작을 발견하고 첫 교향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교향곡 제1번 Eb장조 작품 38, ‘봄’은 슈만이 결혼한 이듬해 1841년 작곡되었다. Eb장조인 이 곡은 교향곡으로 보면 슈만의 음악적 성숙함을 나타내는 곡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완전한 협화음을 의미하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낳은 첫 번째 큰 작품으로, 하나의 특별한 ‘탄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슈만은 이전에는 출판과 레슨, 또는 평론지 발간 등의 활동을 바탕으로 틈틈이 작곡활동을 이어간 불안정한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기반으로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 규모가 큰 작품들을 작곡하기 시작하였고,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고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는 등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붓다는 기원전 6세기경 히말라야산 중턱에 위치한 카필라왓투라는 작은 국가에서 태어났다. 마야 왕비는 꿈에 여섯 개의 상아를 지닌 흰 코끼리가 몸속으로 들어오고 난 후 태자를 잉태하였고, 출산의 시기가 다가오자 당시의 풍습대로 친정이 있는 데와다하로 떠났다.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통증이 시작되었고 곧 큰 고통 없이 남자아이를 낳았다. 그가 바로 싯닷타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그 봄의 한 가운데 고타마 싯닷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1번의 제1악장은 트럼펫과 호른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이 봄을 알린다. 플룻과 오보에 등의 선율이 약 2분간 진행하며 서정적인 선율이 이어져 나간다. 슈만은 이 교향곡에 스스로 ‘봄의 교향곡’ 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 악장에 가득한 행복감 넘치는 선율들은 그가 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얼마나 기쁨에 차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아마도 그의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을 것이다. 슈만이 악보에 ‘잠을 일깨우는 소리’ 라고 직접 적어 놓았을 정도로 곡의 맨 첫머리는 확신에 찬 리듬으로 봄의 기쁨을 알려준다. 이 흔하지 않은 금관악기의 활기찬 서두는 고타마 싯닷타의 탄생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를 뜻하는 것 같다.
 

슈만이 직접 쓴 자필 악보.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오보에와 호른이 서로 넘나들며 온화한 느낌이 연출되는 느린 2악장은 평화로움 속에서도 곳곳에 숨어있는 약동하는 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마치 따뜻한 봄날의 평온함과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서의 마야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야부인은 태자를 잉태했을 때, 다른 여느 산모들과는 달리 심한 입덧과 같은 증상도 없었고, 큰 통증 없이 부처님을 낳았다. 하나의 우주와 같은 거대한 교향곡의 작곡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놀랍게도 슈만은 첫 번째 교향곡의 스케치를 한 달여 만에 끝내고, 두 달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곡을 완성시켰다. 봄에 피어나는 생명에 대한 환희와 교향곡에 대한 슈만의 열정을 부처님의 탄생에 비유할 수 있을까?

부인 클라라는 그녀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슈만은 이 교향곡을 구상하던 중, 시인 아돌프 뵈트거 시의 한 구절인 ‘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 에 큰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또한 슈만은 이 곡을 출판하기 직전까지 각 악장에 ‘봄의 시작’ ‘봄날의 밤’ ‘즐거운 놀이’ ‘봄의 만개’ 등의 제목을 넣으려고 고심했던 만큼 이 교향곡에 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유난히 당김음이 많이 사용된 빠른 스케르초 악장은 문득 아들의 탄생 후, 미래를 점쳐보고자 예언자 아시타를 찾은 숫도다나 왕의 일화를 떠오르게 한다. ‘태자께서 왕 위에 오르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출가하신다면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인류의 스승, 붓다가 되실 것입니다’ 라는 아시타의 예언처럼, 교차되는 바이올린을 필두로 한 날렵한 선율들과 바순과 클라리넷의 응답은 숫도다나 왕의 기쁨을 표현한 것 같다.

슈만은 제1악장의 팡파르 선율을 다시 한 번 마지막 악장에 재현시키면서 전체적으로 봄의 당찬 기운으로 각 악장에 봄의 기쁜 기운을 담고자 했다. 싯닷타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것을 성취한 자’라는 뜻이다. 이 마지막 악장에서 모든 악기가 총 출동하여 나타낸 봄의 환희를, 모든 것을 성취할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만개한 봄의 정경으로 환치시켜 생각하고 싶다.

수많은 예술가곡은 물론이고 비발디의 사계 중 ‘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 5번 ‘봄’, 멘델스존의 무언가 ‘봄노래’,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 등 제목에서부터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이나 가벼운 노래, 즐거운 나날들과 같은 단편적인 봄의 아름다움의 분위기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의 완벽한 ‘봄’을 느낄 수 있는 곡은 단연 슈만의 교향곡 제1번 ‘봄’이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으로, 슈만의 교향곡 제1번 ‘봄’을 부처님의 탄생의 경이로움을 나타낸 완성된 풍경으로 느끼며 감상해보길 권한다. 끝으로 슈만이 작곡가 친구인 타우베르트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해 본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될 때, 그 안으로 들어오는 작은 봄을 맛볼 수 있을까. 내가 이 곡을 처음 쓸 때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네. 깨어나라고 부르는, 마치 하늘에서 전하는 소리 같은 이 트럼펫 소리를 나는 사랑하네. 더 나아가 초록빛으로 점차 변해가는, 나비도 날갯짓하는 세상을 나타내는 이 음악을 나는 사랑하네. 그리고 마지막 알레그로 악장, 봄의 회생에 만물의 행동이 달라지는 모든 것들… 그것을 나는 이 작품을 마친 후에 깨닫게 된다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71호 / 2019년 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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