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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가 불편하다

기자명 유정길
  • 법보시론
  • 입력 2019.01.07 10:36
  • 수정 2019.01.10 10:21
  • 호수 1472
  • 댓글 6

1100여명의 유대인을 구한 스토리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2019년 1월 재개봉된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후 독일인 존 라베 등이 떠올랐다. 존 라베는 1937년 중일전쟁당시 난징의 독일 지멘스의 지사장으로 있으면서 30만명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되는 것을 보고 일본군이 못 들어오게 조계지역을 만들어 난징시민 20만명을 살렸다. 중국에서 의인 칭호를 받는 그는 역설적이게도 나치당원이었다. 또 1939년 2차대전의 전범국 일본의 리우투아니아 외교관 스키하라 지우네는 본국의 명령을 어기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유대인 6000여명에게 무차별적으로 비자를 발급해 그들을 살려냈다. 스위스 외교관 카를 루츠와 스웨덴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도 각각 6만여명에게 비자를 내주어 유대인들을 살렸다.

한편 1947년 30만명의 주민 가운데 3만여명이 학살피해를 입은 제주 4.3사건, 1950년 200여명이 미군에 의해 살해된 노근리양민학살사건, 그리고 1980년 2천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5·18광주학살 등 해방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학살사건이 발생했다. 이승만 정권과 친일세력 및 보도연맹, 미군, 전두환 군사정권이 벌인 국가폭력이었다.

지난 12월13일 중국의 난징대학살 추모행사에 참여했다. 대학살이라는 명칭의 제노사이드(Genocide)가 아니라 메서커(Massacre)라고 표현된 잔혹한 만행임이 지하 전시관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1949년부터 문화대혁명까지 20여년간 티베트를 침공·탄압해 100여만명이 희생됐고 6000개의 사찰이 파괴됐으며, 수십만명이 인도로 망명했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이 죽은 아우슈비츠의 고통과 이들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관계없이 이들이 세운 이스라엘은 오늘까지 팔레스타인과 이웃 아랍국가의 수백만을 희생시키고 있다. 자신들이 당한 피해만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가해하는 사실을 덮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큰 비애를 느끼게 된다. 

위의 모든 집단학살은 국가가 저지른 국가폭력이다. 국가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진 자의 영향력과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폭력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물론 그 권력이 점차 민(民)의 이익으로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과정이었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예의바르고 배려적임에도 왜 저런 학살을 주저 없이 행했을까? 어마어마했던 나치전범 아이히만의 얼굴을 본 한나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할 정도로, 모든 악마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인 것이다. 결국 집단의 힘, 국가와 애국, 민족이라는 힘과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지면 우리는 바로 학살자가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개인으로는 선하고 착할지 모르지만 예비군복을 입혀 집단속에 방치하면 아무데나 방뇨하고 안하무인 폭력을 행사할지 모른다. 지렁이가 꿈틀하는 것은 살기위한 몸부림이자 고통의 몸부림이다. 그래서 불자라면 생명을 죽이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불살생을 위한 철저한 평화선언이 중요한 이유다. 오늘날 이것은 집총거부나 병역거부로 표현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이들의 대체복무로 36개월 교도소합숙이라는 감옥생활을 시키기로 했다는 결정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

일본의 조동종은 1992년 일제의 전쟁 앞잡이 역할을 한 자신들을 참회하며 참사문(讖謝文)을 선언 발표했고, 정토진종 대곡파는 1995년에 부전결의(不戰決議) 선언을 통해 참회와 더불어 불자로서 어떠한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정말 살생에 반대한다면 군승파견부터 깊이 재고해야 한다.

한편으로 일본인에게 사죄를 요구하면서도 우리가 용병으로 참여해 9000여명을 희생시킨 베트남전쟁에 대해 정말 사죄하는 마음을 냈는지 부끄럽다. 내가 겪은 고통은 최대화하고 잊지 말라면서, 내가 벌인 가해는 최소화하고 잊으려고 한다면 이 어찌 정의롭다 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 돌아오니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박항서 축구감독이 베트남에서 국민영웅이 되었다. 우리가 과거에 고통을 주었지만, 오늘날 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지만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ecogil21@naver.com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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