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석가모니의 ‘무니’와 인도식 성인 ‘르시’
2. 석가모니의 ‘무니’와 인도식 성인 ‘르시’
  • 현진 스님
  • 승인 2019.01.07 15:16
  • 호수 14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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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는 신을 초월해 완전한 해탈 성취한 성인

무니·르시 모두 성인이라는 의미
르시는 신의 말 알아듣는 자 불과
어떤 르시도 결코 무니 될 수 없어

인도의 베다전통에서는 그들이 절대존재로 상정한 ‘브라흐만(Brahman)'이 어떤 가르침을 읊조렸을 때 그것을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기에 듣고서 있는 그대로 기억하여 인간들에게 전해준 이를 성인(聖人)이란 의미인 르시(ṛṣi)라고 부른다. 그래서 브라만교의 성전인 베다(Veda)는 브라흐만의 읊조림을 알아들은 르시에 의해 보다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 문자의 기록이 아닌, 들려진 그대로 입과 입을 통해 전달되다 십 여 세기를 지난 한참 후에야 글자로 기록되었다.

갠지스 문명의 주인공인 아리안(āryan)족의 명칭이 나아간다는 의미인 동사 뤼(√ṛ)에서 온 것과 유사하게, ‘르시'라는 이름 또한 나아간다는 의미의 동사 르쉬(√ṛṣ)에서 왔는데, 이는 ‘아리안족'과 ‘르시'가 브라흐만 혹은 해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란 공통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그 명칭이 어원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이란 의미를 지닌 것도 있는데, 곧 불가촉천민은 어찌하더라도 해탈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암시한다.

부처님시기 훨씬 이전의 베다시기부터 현인이란 의미의 ‘무니' 또한 인도 문화에 존재했었다. ‘무니'라는 이름의 어원은 생각하다(√man)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신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대로 좇아가는 수동적인 르시에 비해, 무니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동적인 인간인 셈이다. 그래선지 절대존재를 따르는 수동적인 특색의 인도 베딕문화에서 무니는 그저 이상한 차림으로 숲에 거주하며 신통력이나 부리는 우리네 하급 신선 비슷한 부류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무니가 르시에 대비될 만큼 어엿한 성인이나 현인의 한 부류로 부상하게 된 것은 불교를 비롯한 신흥종교들이 브라만교에 대항하여 활기차게 일어나면서부터이다. 전통 브라만교의 관점에서 절대존재 브라흐만과 그 가르침인 베다의 권위에 절대복종하는 수동적인 보수성향의 르시가 훌륭한 이라면, 무니는 무엇보다 인간중심의 능동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진보성향의 훌륭한 사람을 가리킨다.

무니가 르시에 어엿한 대비를 이룰 정도로 부각된 것은 불교에서이다. 불교는 절대존재와 아뜨만이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함과 동시에, 무엇보다 신에 의지한 수동적인 인도문화에서 최초로 피어난 인간중심의 능동적인 사고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그 교조를 ‘석가족의 현인 또는 성인’이란 의미에서 무니란 명칭을 써서 ‘석가모니'라 일컬은 것이다.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계급제도의 설명 또한, 원래 왕족과 군사계급인 끄샤뜨리야가 가장 높았었는데,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신을 섬기는 사제계급인 브라만을 끄샤뜨리야의 위로 올려서 사회적인 지위를 높여놓은 것일 뿐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석가모니께서 브라만계급이 아닌 끄샤뜨리야 계급으로 태어나셨기에 나온 표현이겠지만.

나아가 이후의 불교적인 시각에선 다소 개념의 변화가 있는데, 르시는 베다를 기록해낸 고대의 성인 정도로 여기는 반면, 무니는 인간은 물론 신이나 그 이상을 초월하여 완전히 해탈을 성취한 자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어떠한 르시도 무니의 반열에 오를만한 자는 존재할 수 없다 하는데, 이는 어쩌면 불교의 아전인수격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니의 대명사격인 ‘석가모니'란 일컬음을 귀하게 여겨야하는 것은 불교가 신에 의지하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으려는 자력종교(自力宗敎)라는 점 때문이다. 절대존재에 의지한 채 수동적으로 뒤따르며 믿고 우러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깨달아가는 최고의 가르침이 불교이기에, 결국엔 무니가 되어야지 르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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