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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례식과 우주적 먹이사슬

기자명 고용석

음식은 우주적 희생과 소통 합작품

살아있으면서 죽는것이 명상
밥은 제 생명 나에게 바친 것
인간 먹이사슬 최상위 벗어나
누군가의 밥이라는데 공감을

구도자가 먼 곳에서 한 스승을 만나러 왔다. 마침 스승이 장례식에 갔는지라 그곳으로 안내받는다.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스승을 알아볼 수 있는지 묻자 머리에 후광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스승이라고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도저히 스승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모두가 후광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례식장을 나오자 모두가 후광이 사라지고 오직 한 분만이 여전히 후광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분이 바로 찾던 스승이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상함과 함께 삶에서 죽음으로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흐르는 더 큰 전체의 일부라는 신비를 자각한다. 살아있으면서 죽는 것 그것이 명상이다. 명상 때 마다 우리는 죽는다. 죽는 연습을 한다. 그래야 삶은 더욱 맛깔나고 언제 죽음이 닥치더라도 환영할 수 있다. 음식의 맥락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도 이런 자각이 가능하다.

밥 한 공기가 밥상에 오르려면 볍씨와 햇빛, 빗물과 바람, 대지의 숱한 미생물, 농부의 땀과 밥 짓는 이의 정성 등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 음식은 온 우주적 희생과 소통의 합작품이자 선물이고 은혜이다. 먹는다는 것은 이 질서에 의식적인 참여이다. 밥은 다른 생명체가 제 생명을 나에게 바친 것이니 나도 누군가의 밥이 되는, 먹히는 삶을 살아야 제대로 동참하는 셈이다. 이렇듯 먹고 먹히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은 삶과 죽음의 인드라망이자 만물로서 만물을 부양하는 상호부양체계이다. 인간은 이 우주적 먹이사슬의 손님이자 동시에 음식이다. 먹는 것은 인간을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두는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만물이 에너지를 공유하는 신성한 행위이자 에너지 교환이다. 즉 우주적 먹이사슬의 그 거대한 순환구조에 참여하는 방법이자 신성한 의례이다. 그렇기에 다른 생명체를 취하는데 있어 연민과 자제,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한다.

음식의 우주적 의미에 대한 통찰은 패러다임 전환이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환경이 우리와 별개로 독립된 게 아니라 우리자신이 환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교의 지수화풍 사대의 예를 들어보자.

공기는 98%의 산소와 질소, 1%의 아르곤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아르곤은 숨을 들이쉴 때 몸속으로 들러왔다가 내쉴 때 다시 나간다. 과학자에 의하면 1년 후 어디에 있든지 한 번 숨 쉴 때마다 1년 전 쉬었던 숨에서 나온 아르곤원자 15개씩을 마시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마시는 숨에는 부처님과 예수님, 선사와 역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 있던 아르곤원자도 들어가 있는 셈이다. 6500만년 전 공룡의 아르곤 원자도 들어가 있고 우리가 숨을 쉴 때마다 먼 미래의 모든 생명체에 우리가 쉰 숨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인간 몸의 대부분인 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모두 세상에 있는 대양들, 삼림들, 평야에서 증발한 물 분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지구적 물 순환의 일부이다. 흙도 예외가 아니다. 토양에는 유기체와 무기체, 동물과 식물, 광물질이 모두 관계를 맺고 죽음으로 생명을 키우고, 그것은 더 많은 생명을 먹여 살린다. 토양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사실 모든 에너지는 태양광이다. 광합성을 통해 화학에너지로 바뀌면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어서 에너지를 축적 사용한다.

지구의 생명체는 물, 에너지, 공기, 흙의 신성한 순환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순환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행위는 자신을 오염하고 해치는 행위다. 순환을 생성하는 생명의 그물망 즉 생물다양성 또한 그렇다. 우리는 이 생명의 그물망 일부이자 동시에 우리 내면의 자비와 연민은 그물망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이 자비와 연민이야말로 우리가 하는 일의 맥락을 확장시키는 유일한 실재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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