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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범부와 현자의 차이

부정적 감정 자아와 동일시 과정서 고통 생겨

실존적 고통 누구나 겪지만
지혜로 부차적인 고통 피해
이것을 두 번째 화살에 비유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소유적 삶의 양식’보다 자신의 실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여 그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존재적 삶의 양식’이 매우 소중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삶의 양식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 속 두 마리 애벌레의 여행담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끝없는 생존경쟁의 대열보다는 나뭇가지에 고치를 짓고 자유로운 나비의 삶을 꿈꾸는 두 마리 애벌레의 최후의 결단은 인간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네 삶의 좌표와 예지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내적이고 평화로운 삶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 자칫 현실도피적인 처세나 소극적인 삶의 방식으로 오해될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교에서 제시하는 행복한 삶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감정이나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기반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단순히 정신적 위안이나 마음의 평화만을 추구하자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 이러한 삶의 태도는 일견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의 삶과도 일맥상통한다.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작은 행복이나 지혜로운 삶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지적인 성찰과 연기적 통찰을 일상선(日常禪)의 차원에서 알아차림(sati)을 계발하고 생활화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인식의 구조 중 자신의 감정이나 인식과정에 대한 명확한 연기적 이해와 그 지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상윳타니카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화살의 비유를 통해 상징적으로 설한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게 되면, 근심하고 상심하며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결국 그는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에 의해 이중으로 괴로움을 겪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는데, 다시 두 번째 화살에 또 다시 맞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두 개의 화살로 인해 초래되는 괴로움을 모두 다 겪게 된다.”

여기서 첫 번째 화살은 실질적으로 외부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자극이나 괴로움이 발생하는 제1차적인 조건을 말한다. 이러한 첫 번째 화살은 실존적으로 누구나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정신적 감정, 즉 첫 번째 화살에 집착하여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부차적인 괴로움에 지나지 않기에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예컨대 자신의 인식과정에 대한 연기적 혹은 지적 통찰이 부족한 범부들은 두 번째 화살에도 맞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범부들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자동화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현자)들은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 괴로움만을 경험할 뿐이며, 결코 정신적인 괴로움은 겪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지만 그 첫 번째 화살에 연이은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첫 번째 화살로 인한 괴로움만을 겪게 된다.”

요컨대 현자는 실존적으로 누구나 겪게 되는 부정적인 제1차적인 조건, 즉 일상적인 외부나 내면적인 부정적 심리작용에는 노출되지만, 그로인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두 번째 화살은 지혜롭게 피할 수 있다. 결국 범부와 현자의 차이는 두 번째 화살을 어떻게 피하는지 그 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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