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호손의 큰바위얼굴
97. 호손의 큰바위얼굴
  • 김정빈
  • 승인 2019.01.07 15:54
  • 호수 147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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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 얼굴 매일 흠모했기에 덕성까지 닮게된 것”

어니스트의 대표작 ‘큰바위얼굴’
얼굴 담긴 고매한 덕성 돋을새김
서서히 얼굴도 마음도 고상해져
부처님 향한 믿음도 이와 같아야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너세니엘 호손(N. Hawthorne, 18041~864)은 매사추세츠 세일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청교도였다. 청교도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뉴잉글랜드로 망명하여 현재의 미국을 있게 한 첫 번째 이주자들이 믿던 기독교의 일파이다.

윤리도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남들에게도 강요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너세니엘이 태어난 세일럼에서도 청교도들은 일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거나 고문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

그 처형과 고문에 자신의 조부가 관계되었다는 것이 너세니엘에게는 뼈아팠다. 사색적인 성품을 가진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윤리도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고양시키며, 또한 어떻게 탄압하는지를 탐구했다. 그 결과 그는 윤리도덕이라는 이름 배후에 인간이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심리가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인간은 자신에게 가혹한 윤리도덕을 덮어 씌우기도 하고 남들에게까지도 윤리도덕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윤리도덕가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겉으로만 윤리도덕을 내세울 뿐인 그 저급한 마음은 여전히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겉으로만 윤리도덕을 내세우는 위선자인 것이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너세니엘 호손은 청교도의 후예이면서도 청교도를 비판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메인주의 산골 레이몬드로 가서 3년간 고독을 벗하며 살았다.

얼마 후, 그는 보든대학에 입학했는데, 학업성적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그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세일렘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글을 썼다. 얼마 후, 호손은 처녀작을 자비로 출판했지만 자기 작품에 불만족을 느껴 곧 배포된 책을 회수했다.

1830년, 그는 첫 소설집을 내어 대학 동창인 유명한 시인 롱펠로로부터 천재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름이 약간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의 살림살이는 궁했다. 1942년, 그는 소피아라는 처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저명한 철학자인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는 목사관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너세니엘은 세관에 취직했다. 적은 급료를 받고 일하면서 그는 틈틈이 작품을 써 모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세관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게 되었다. 낙망한 그가 집으로 돌아와 불행한 사실을 아내 소피아에게 전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피아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잘된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동안 직장에 다니시느라고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지 못하셨잖아요? 이제부터는 제가 일할 테니까 당신은 원하는 글쓰기에 전념하도록 하세요.”

아내를 바라보는 호손의 눈가에 고마움이 가득 담긴 이슬방울이 맺혔다. 그때 이후 글쓰기에 몰두함으로써 호손은 곧 장편소설 ‘주홍글씨’를 완성했다. 호손의 작품으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은 ‘주홍글씨’와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이다.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이 사는 마을 앞산에는 숭고한 표정으로 마을을 굽어보는 ‘큰바위 얼굴’이 있었다. 어니스트의 어머니는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아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언젠가 이 마을에서 저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였다.

그때 이후 어니스트는 가끔 전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큰바위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는 동안 큰바위 얼굴의 형상은 그의 마음에 돋을새김으로 각인되었다. 더불어, 큰바위 얼굴의 영감 넘치는 고매한 덕성이 그의 마음에, 골짜기를 채우는 새벽 안개처럼 뭉게뭉게 일어나 차올랐다.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 어니스트는 전설의 성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흘러 이 마을 출신으로 도시에 나가 큰 부를 축적한 어떤 사람이 큰바위얼굴의 주인공이라는 소문이 들려왔고, 얼마 후에 그 사나이가 고향을 방문했다. 군중들은 그를 향해 환호성을 질러댔지만 어니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저 탐욕스러운 얼굴이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일 수는 없어”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시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정치가 한 사람이 전설의 주인공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그가 고향 마을을 방문했을 때, 어니스트는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또 세월이 흘러 어니스트는 이제 노인이 되었다. 그 무렵 이 마을 출신인 한 시인이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어니스트는 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시인은 정말로 전설의 주인공이 아닐까?’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인이 그를 찾아온다. 어니스트는 시인에게 당신이 전설의 주인공이냐고 묻지만 시인은 대답했다. “나는 전설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당신이 시에서 느낀 감동이 나의 인격적 차원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는 지난날 어니스트를 실망하게 했던 부자와 정치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고상한 정신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누며 마을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선교사인 어니스트가 대중을 상대로 강론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날도 어니스트는 석양을 배경으로 삶에 대해 강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인이 흥분하여 외쳤다.

“다들 보십시오, 어니스트의 얼굴이 얼마나 큰 바위 얼굴을 닮았는지를!”

불교가 불제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다. 마치 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의 형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 것처럼 불제자는 부처님의 형상을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나아가, 불제자는 부처님의 덕성 또한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만 한다.

지칠 때마다, 처질 때마다,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큰바위 얼굴로서의 부처님을 바라보자. 부처님의 숭고한 정신, 위대한 덕성을 흠모하기를 그치지 말자. 이것을 계속하는 한 그는 나날이 진보할 것이다. 그런 끝에 그는 어느 날,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의 지점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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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2019-01-08 10:42:13
붓다의 법에 대한 탐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