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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만델라에게 배워야 할 것

기자명 이병두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전체 인구의 15% 정도에 지나지 않는 네덜란드 이주민 후예(보어인, Boer)들이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선주민 흑인과 인도계 주민 및 혼혈인들을 철저하게 차별‧탄압하였다.

다수를 차지하는 유색인들은 투표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동의 자유조차 누릴 수 없어서 관공서에서 발급받은 통행증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없었다. 유색인들 특히 ‘인간이 아닌 인간’ 취급을 받았던 흑인들에게 ‘자유‧인권‧평등’ 등은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저항하다 구속되거나 고문‧살인을 당하였다.

그러나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남아공의 이 인종차별 정책도 숱한 희생을 치른 국민 저항 앞에 무릎을 꿇고, 흑백인 사이의 협상을 걸쳐 1994년 5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한 총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승리하여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뽑히면서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넬슨 만델라(1918~2013)의 삶은 파란만장하였다. 저항운동에 투신하면서부터 늘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걸핏하면 체포‧투옥 당하였으며, 만 27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한때 비폭력 저항 노선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적이 있어서 그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1990년 2월 길고 긴 옥살이를 끝내고 나와 자유를 얻은 뒤 처음으로 한 그의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남아공 백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안도하였다. “사람이 증오를 배울 수 있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증오보다 사랑이 사람의 본성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 수립을 두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백인 정권을 이끌었던 데 클레르크와 만델라는 공개‧비공개 자리를 가리지 않고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두 사람이 1993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뒤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과연 두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남아공의 미래를 비관하였다. 그러나 만델라는 데 클레르크가 정치 협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제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느냐 아니냐와는 무관한 문제입니다”며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그의 자세는 대통령이 된 뒤에 진가를 발휘하여, 국민(흑백) 화해를 촉진하기 위해 애쓰는 그의 진심이 흑백 양쪽의 동의를 얻게 되었다. 과거의 정적들에게도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여, 자신을 억압했던 데 클레르크를 각료로 받아들였으며, 그가 민주주의의 달성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여 ‘아프리카의 위대한 아들’이라고 칭찬했다. 보어인들이 쓰는 아프리칸스어를 ‘희망과 자유의 언어’라고 묘사하였고, 공무원들에게 정부 개혁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연설을 할 때도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등 기득권을 가진 백인들을 다독여 안도하게 하고 그들의 개혁 동참을 이끌어냈다.

그는 화합 정책이 말의 잔치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지도자들과 유력한 흑인 활동가들의 부인 및 미망인들을 함께 초청하여 ‘화해의 점심식사’라는 행사를 마련하고,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뒷날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데 대한 유감의 뜻까지 표현했던 검사를 만나기 위해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등 국민 화합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이런 노력이 아니었으면, 남아공은 독립 이후 내란과 피의 복수를 이어갔던 로디지아‧앙골라‧르완다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극도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가까워온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만델라의 ‘화해의 점심식사’정치를 배워, 야당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敬聽‧傾聽)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기 바란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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