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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명관에서 발원은 시작됐다

괴로움 소멸 원력 세웠던 동기는
존재의 생명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
평화를 위한 전법선언으로 이어져
행복 소망 발원문 백미는 ‘자애경’

죽림정사에 계셨던 부처님이 라자가하 시내로 탁발을 나가셨을 때 한 소년(훗날 아소카왕)이 흙을 공양하는 모습. 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죽림정사에 계셨던 부처님이 라자가하 시내로 탁발을 나가셨을 때 한 소년(훗날 아소카왕)이 흙을 공양하는 모습. 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인간의 심층적인 종교적 각성을, 존재와 온 생명의 실상을, 나와 세계의 유기적 관계를 통찰하여 인류에게 벅찬 감동과 고요한 기쁨을 선사한 위대한 성인은 단연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AI와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종교의 영역을 위협하고 침탈하는 탈종교화시대에 주체적 생명력으로 나 자신을 일깨우는 수행과 존재의 깊이 속에서 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불교의 종교성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탁월한 통찰력과 원력 때문이 아니겠는가.

먼저 부처님의 탄생게를 보자. 탄생게는 생명에 눈을 뜬 부처님의 발원문이라고 봐도 좋다.

“하늘 위, 하늘 아래서 나 우뚝 존귀하네, 온 세상이 괴로움에 쌓여 있으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

‘하늘 위, 하늘 아래서 나 우뚝 존귀하네.’ 이 말은 누구도, 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생명력, 나 자신의 주체성과 고귀함, 그러한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다. 믿음이 없다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행동하기 어렵고 두렵기조차도 하다. 이러한 확신에 찬 믿음 속에서 그 다음 구절이 더욱 힘 있게 들려온다.

“온 세상이 고통에 쌓여 있으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

세계는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다. 하이데거도 말했듯이 인간은 ‘세계-내-존재’이다. 나는 세계 속에서 여러 존재자들과 어울리고 배려하면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괴로움은 저 산 너머 타자의 슬픈 얼굴은 전혀 아닌 것이다.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 나 홀로 평안할 수 있다면 그는 괴물이다. 괴물은 타자를 괴롭히고 절망에 빠뜨리는 자다. 석가모니는 괴물의 세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원을 발한다. 이 세상의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 편안케 하리라고. 이러한 생명관에 입각한 서원의 힘으로 역사는 그리고 인류는 새로운 희망을, 구원의 길을 발견하고 터득한다.

바로 그것이 많은 사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전법선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법선언문은 부처님의 대표적인 발원문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그대들 역시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법을 전하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겨 길을 떠나라.
마을에서 마을로,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
(…중략…)
비구들이여,
나도 법을 전하러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리라.”(‘율장’의 ‘대품’)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신과 인간이 그들만의 잣대로 틀지어 놓은 세계와 그 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의 뜻에 따라 살면서 그러한 신이 시여하는 축복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삶은 창조적이지 못하다. 아상에 가득한 사람들이 쳐 놓은 관습과 편견의 굴레 또한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우리들의 맑은 시선을 가로 막는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그런 신과 인간들이 쳐 놓은 장벽을 타개하고 주체적이며 창조적인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로웠고 평화로웠다. 그들을 그렇게 이끈 것은 진리였다. 법이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법을 전하라고 부촉하며 자신도 법을 전하겠다고 원을 발한다. 법을 전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도 그들처럼 걸림 없는 자유를 누리며 주체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해방되었다는 것은 지혜로운 통찰과 열린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유연하게 사람들을 안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는 의미다. 그런 사람은 원만하고 완전하며 청정한 행동을 보인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기에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두려움 없이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준다. 그래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걸식을 하며 길을 간다. 그것은 비장한 원력으로 길을 걷는 소박하지만 장엄한 행렬이다.

그 결과 어찌되었던가. 부처님은 80평생 동안, 그의 제자들과 함께 세상 사람들을 위해 법을 전했다. 그래서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눈을 뜨고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바보 천치 같은 사람, 눈이 살기로 가득했던 살인마, 똥지게를 지어 나르던 가난한 천민, 남편과 시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가련한 연인, 아기를 잃고 절망에 빠진 어머니, 아무리 부를 손에 넣어도 그 욕망을 채울 수 없었던 거부장자,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지만 마음이 허전했던 왕 등 많은 생명들이 눈을 떠 진정한 행복을 누렸다.

부처님은 이렇게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이 괴로움을 멀리 떠나 행복하길 바랐으며 그렇게 몸소 행동하며 보여주었다. 온 생명의 행복을 소망하는 발원문 중 백미를 꼽자면 ‘숫타니파타’의 ‘자애경’이리라.

“어떤 생명을 가진 존재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빠짐없이, 좁고 긴 것이든 거대한 것이든, 그 중간 것이든, 짧고 작은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눈에 보이는 큰 것도, 지금 바로 이곳에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있는 것도, 과거에 있었던 것도 또는 미래에 있고자 하는 것도, 모든 생명들이여, 진심으로 행복하소서.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 되리.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해서도 안 되리. 화를 내어 남에게 괴로움을 주어서도 안 되리. 어머니가 자신의 외아들을 목숨 바쳐 보호하듯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소서.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를 행하소서. 위로 아래로 옆으로 확장하여 어떤 걸림도 없이, 적의 없이, 한량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펼치소서.”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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