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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제와 속제, 참값과 오차

수학의 도형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 현실에선 불가능

삼각형의 내각 합 180도는 속제
현실서 그런 도형 불가능은 진제
무상·무아 아닌것 발견된 적 없어

불교에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가 있다. 진제는 궁극 진리이고, 속제는 얼핏 진리이다. 모든 것이 무아(無我)라는 것은 진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주체인 아(我)가 있다는 것은 속제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아(我)가 있다. 불교는 무아라는 것을 가르치지만 범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자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이고, 이름난 고승들도 잘못 이해하기 쉬운 이유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불교의 참나(眞我, true atman)이다. 참나는 힌두교적인 아트만에 지나지 않는다.

수학은 기하학적인 도형을 말하지만 상상 속의 도형일 뿐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완벽한 삼각형, 원, 삼각뿔, 구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로 이루어진 완벽한 삼각형, 원, 삼각뿔, 구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삼각형은 일직선상에 있지 않은 세 점을 직선으로 연결한 도형이고, 원은 중심으로부터의 거리가 동일한 도형이다. 하지만 아무리 종이 위에 삼각형과 원을 그리려 해도 완벽한 삼각형과 원은 그릴 수 없다. 첫째, 종이가 완벽한 평면이 아니고, 둘째, 찍은 점은 완벽한 점이 아니고, 셋째, 그린 선이 완벽한 직선과 곡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점은 면적이 없어야 하는데 연필로 혹은 아무리 가는 필기도구로 점을 찍어도 반드시 면적이 있기 때문이다. 선은 직선이건 곡선이건 폭이 없어야 하고, 직선은 구부러지면 안 되는데, 연필로 혹은 아무리 가는 필기도구로 선을 그어도 폭이 있으며, 아무리 똑바른 자를 대고 선을 그어도 구불구불하기 때문이다.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은 속제이고, 그런 삼각형은 물질세계에는 없다는 것은 진제이다. 직선도 물질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것을 삼각형 또는 원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삼각형이고 원이라고 다들 동의한다. ‘금강경’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물질세계에서, 즉 상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삼각형과 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삼각형이 아니고 원이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이 삼각형이고 원일 뿐이다. 이것이 진제이다. 오직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수학적인 삼각형과 원은 속제이다.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아(我)는 존재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아(我)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제이다. 편의상 아(我)라고 할 뿐이다, 속제이다.

큰 틀은 속제이고, 현실은 진제이다. 큰 틀은 세우지 않으면 (물질적 정신적)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 현실이 바로 진제라는 것이 불교적 깨달음이다. 즉 진제는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현상의 배후에 불변의 실체로서 수학이 있다는 것은 속제이고, 사물과 현상의 배후에 진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 사물과 현상이 바로 진제라는 것은, 즉 무상(無常)·무아(無我)라는 것은 진제이다. 고(苦)는 약간 다른 문제이다. ‘일체는 개고’라고 할 때 고는 의식과 신경계가 있는 생물에게만 해당한다. 의식과 신경계가 발달하지 않은 생물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진화론이 중요한 이유이다. 윤회를 진화론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과거에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였다. 35겁 동안, 즉 35억년 동안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들 동물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윤회이다. 생물의 몸과 마음의 모습은, 도덕적 선악에 의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환경 사이의 연기관계에 의해서 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무아라는 것은 파악하기 힘들다. 증명하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인식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각기관과 사유능력을 이용해 세계를 파악하는데 감각기관과 사유능력이 완벽하지 않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계에 망상이 바글바글한 이유이다. 경험세계도 유한하다. 최대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것들은 다 그렇다는 것이다. 아직, 무상이 아니고 무아가 아닌 것은 발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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