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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양해의 ‘출산석가도(出山釋迦圖)’

기자명 김영욱

깨달음은 일상에서 이루어진다

6년만에 고행 포기한 젊은 석존
그럼에도 의지만은 꺾이지 않아
마른 가지서 열매 얻을 수 없듯
깨달음도 몸 학대해선 얻지 못해

양해 作 ‘출산석가도’, 13세기, 비단에 먹과 채색, 117.6×52.0㎝,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양해 作 ‘출산석가도’, 13세기, 비단에 먹과 채색, 117.6×52.0㎝,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金剛山聳海東濱(금강산용해동빈)
峯黙溪喧各自眞(봉묵계훤각자진)
堪笑老僧斯不識(감소노승사불식)
飢虛爲道謾勞神(기허위도만로신)

‘동쪽 바다에 금강산 높이 솟았으니 고요한 산봉우리 시끄러운 시내도 저마다 참되구나. 우습구나, 늙은 스님은 이 이치 모르고 굶는 것을 도로 여겨 정신만 힘들게 하네.’ 보우(普雨, 1509~1565)의 ‘벽곡하는 늙은 스님에게 주다(寄辟穀老僧)’.

햇수로 7년, 만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삶의 번뇌를 끊어내기 위해 ‘고행림’에 들어갔던 샤카족의 젊은 사내가 깡마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굴을 감싼 지저분한 수염과 넝쿨처럼 자란 머리, 그리고 메마른 체구는 극심한 고행의 결과를 보여준다. 공간을 사선으로 나누는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언덕과 모든 잎사귀가 떨어져 버린 고목의 날카로운 가지가 전해주는 미묘하고 불안정한 긴장감은 고행의 실패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먼 곳을 응시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대지 위에 굳건히 서 있는 모습에서 확신에 찬 젊은 석존의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중국 남송대의 화가 양해(梁楷)의 ‘출산석가도’는 6년간 고행의 길에 들어섰던 석존이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산을 벗어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시에는 고행과 선정의 두 가지 수행법이 있었다. 중부 인도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여섯 사상가, 즉 육사외도(六師外道; 푸라나 캇사파, 막칼리 고살라, 아지타 카사캄발린, 파쿠다 캇차야나, 산자야 벨랏티풋타, 니간타 나타풋타)가 고행을 추구한 점에서 선정보다 고행이 일반적인 수행법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석존은 마가다 국 우루웰라 마을 부근에 있는 산에 들어가 고행에 전념했다. 숨을 멈추고 음식을 끊는 지식(止息)과 단식(斷食) 등 여러 고행을 병행하며 모든 괴로움을 참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고행은 몸을 상하게만 할 뿐 괴로움을 일으키는 심리적 원인을 제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해탈에 이르는 바른길이 선정이라고 확신하며 산을 벗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부터 반복되는 일상의 소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괴로움은 삶과 함께한다. 괴로움은 수많은 욕망과 혐오로부터 생겨나고 이내 마음을 더럽게 물들인다. 불가에서는 이를 번뇌라고 말한다. 번뇌를 끊어내고 마음을 본래 모습으로 정화하고 해탈에 이르는 수행이 곧 선정과 고행이다.

몸에 육체적인 고통을 가해 어떤 괴로움도 참을 수 있는 것과 괴로움을 일으키는 심리적 원인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석존은 그 차이를 깨달았다. 6년간의 고행에서 벗어나 마음의 명상을 통한 선정의 수행으로 전환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신외무물(身外無物)’이다. 몸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으니, 무엇보다도 몸이 귀한 것이다. 메마르고 갈라진 땅에서 곡식이 자랄 수 없고,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처럼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아야 한다. 깨달음은 몸을 버린 죽음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있는 삶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곡기 끊는 늙은 스님이 있는가.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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